TV에서 '효리네 민박'이 나온다.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집 마당과 내부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닌다. 마침 부엌 식탁 한편에 새침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가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저 밥 먹는데서 털 날리게 저게 뭐니 ㅉㅉ." 곧이어 주인 뒤꽁무니 따라 부엌을 마음대로 오고 가는 개들이 나온다. 한마디 더 하신다. "저저 집에서 정신 사납게.." 보통 이럴 때면 어머니는 "요즘은 개나 고양이를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하며 아버지를 시대에 흐름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맞불을 놓으신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짐승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계신다. 텔레비전에 조금 평범하지 않게 강아지나 애완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고 꼭 한 마디씩 내뱉으신다. 예를 들면 "못 먹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저 짐승한테 뭐하는 짓인지. 돈이 남아 도나보다." 보통 그 주인공들의 형편이 좋아 보이면 "개팔자가 상팔자네." 정도의 말만 하고 채널을 돌리셨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저럴 돈 있으면 본인한테나 쓰지 ㅉㅉ"하며 혀를 차대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어렸을 시절 시골 여름 풍경은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아 대부분의 촌사람들은 뙤약볕 밑에서 농사일로 평소보다 곱절의 힘을 들여 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복날이 되면 다른 가축 닭이나 돼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개를 잡아 고기는 수육을 해 먹고 남을 뼈와 고기를 솥에 넣고 푹 끓여 육개장 비슷한 것을 만들어 여름철 체력을 보충하였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여러 종류의 강아지부터 대형견까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벤치에 앉아 자신의 강아지와 여러 번 입을 맞추는 아줌마,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키는 할머니, 꽤 큰 덩치를 가진 대형견에 목줄을 메달고 끌려가는 여학생까지 종류도 참 다양해졌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반려견을 기르는 가구가 늘어난 동시에 천적이 없어져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 내에 길고양이 수도 엄청 늘었다. 얼마 전엔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일로 찬, 반 두 갈래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이는 일까지 있었다. 요는 먹이를 주니 길고양이가 몰려들고 남은 음식 찌꺼기와 배설물들이 냄새를 유발한다는 쪽과 그 반대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했다. 실제로 주차장과 화단 구석진 곳에서는 음식이 얹여진 신문지나 비닐봉지, 물을 받아놓은 조그마한 양푼 같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 한 여직원이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무가 출근을 하고 과장이 그 사실을 알리며 말했다. 아침에 XX 씨가 울면서 전화를 왔다고 한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나이가 들어 죽어서 출근이 어렵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례 절차를 거쳐 화장을 한다는 사실이. 그렇지만 한편으론 오랜 시간 같이 부대끼고 살아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어머니와 십육 년을 함께 산 몰티즈 '봉순이'가 예사롭지 않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작년 이맘때쯤부터였다. (중략) 사실 봉순이를 처음 애견 매장에서 분양받아 어머니 품에 맡긴 것은 나였다. 환갑이 되자마자 간암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의 빈자리를 나는 그런 식으로 메우려 했다. 남양주에 막 신혼집을 꾸린 것도 그때였고 아무래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으니까. 아버지의 자리를, 아들의 자리를 봉순이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봉순이는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나갔다. 그런 봉순이가 세상을 뜬 것이었다.
"사흘 전쯤에 말이다... 봉순이가 눈감기 사흘 전쯤에.... 자고 일어났더니 얘가 내 베개 옆에 가만히 엎드려서 빤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잠결에 얘를 안아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봉순이가, 봉순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봉순이를 왈칵 안았는데...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봉순이가 엎드려 있던 곳을 보니까... 거기에 내 양말 두 짝이 얌전히 놓여 있는 거야...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테는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반려동물은 배우자가 되기도 때로는 자식의 역할을 대신하며 사람들 옆자리를 지킨다. 이야기 속 할머니는 사별 후 적적한 시간을 같이 보낸 봉순이에게서 배우자와 자식에게는 느끼지 못했을 그 이상의 따뜻한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힘든 시기에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친구에게 더 고마움을 느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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