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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편식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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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really picky about food when I was young.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했다. 육류는 가리지 않고 다 먹었지만 채소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집에서는 번거롭지만 자식 밥 굶길까 봐 매 끼니때마다 잘 먹는 반찬 몇 개씩은 준비해주셨다. 하지만 간혹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다른 가정을 방문해서 밥을 먹을 때 먹지 못하는 반찬이 나와 당혹스러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김치를 못 먹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라면에 김치를 같이 넣어 끓여 주신다거나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도시와는 다르게 소박하고 채소 중심의 식단으로 밥상이 차려져 김으로만 밥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할머니께서 이런 나를 지켜보시곤 '질이 더럽게 들었어, 쫄쫄 굶어봐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으시기도 했던 것 같다. 



급식 세대인 나는 학교에 가서도 편식으로 꽤나 고생을 했다. 담임 선생님 한 분은 편식을 하지 못하게 직접 음식을 식판에 담아주시기도 하셨는데 눈치를 보며 먹지 못하는 음식을 한가득 입에 머금고 친구와 같이 화장실에 가서 뱉어 내고 왔던 적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걸려서 발바닥을 맞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악 중의 최악은 군 복무 시절이었다. 아무리 한국인은 김치라고 하지만 김치는 매 끼니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리고 이병은 잔반을 남길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위에 선임이 몰래 나의 김치를 먹어주기도 했고 내가 요령껏 빼돌려 무사히 식사를 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은 제주도로 가는 배안에서 터지고 말았다. 육지에서의 식사와는 달리 배안에서는 식단은 조금 더 고급 졌다. 짜장이 나오면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여 주었고 함께 나오던 우유도 흰 우유뿐만 아니라 딸기, 초코 맛으로 바꿔가며 배식되었다. 뿐만 아니라 저녁을 먹고 8시 즘에는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나 과일 통조림이 후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루는 후식으로 컵라면과 김치가 나왔었다. 마침 다른 소대 병장 선임과 같은 식탁에 앉아 먹게 되었는데 한껏 긴장한 이등병인 나를 생각해서 많은 양의 김치를 옆에 덜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외쳤지만 라면 면발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혼란의 상태에 빠졌다. 신경 써서 챙겨준 김치를 손도 대지 않자 '김치 왜 안 먹어? 괜찮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먹어.'라며 100% 캐시미어로 짜인 목도리 같은  따스한 말을 해주었지만 김치를 못 먹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감사합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자 김치로 향하는 어설프고 주저하는 나의 젓가락 질을 보고는 '너 혹시 김치 못 먹냐?'하고 물었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입술을 깨물자 '야 이 새끼 김치 못 먹어!'하며 식당이 떠나가라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생략하겠다. 그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한동안 밥보다 김치를 더 많이 퍼서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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