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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분노는 돌아오는 거야.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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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깜빡이를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드는 차는 백번 봐주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앞질러 똑같이 복수를 해주던지 거친 욕을 쏟아부어야지만 그제야 진정이 된다. 회사에서 업무 중 고객사의 갑질에 한껏 불타올랐던 나는 분노를 풀기 위한 대상인 더 낮은 '을'을 찾아 서성인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욕을 제일 거리낌 없이 할 때는 뉴스를 볼 때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 뉴스를 보며 분노하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간혹 나 자신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에서 지켜보면 분노 조절 장애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간혹 있다. 때로는 종이 한 장 차이 정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안정된 상태에서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 소총처럼 거친 욕설이 먼저 장전되어 발사되어 나간다. 화가 표출된 다음에야 상대방에게 그렇게 할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충분히 발 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 하고 그제야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거친 욕설로 가득 찬 나의 일차원적 분노는 뭔가 속 빈 강정과 같은 느낌이다. 내 입만 나빠지고 나의 저질 욕설은 주변 사람들 귀만 더럽힐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거침없이 화를 낼 수 있는 건 자신을 예외적인 위치에 놓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분노에는 존재가 담기지 않는다.'

'우리는 분노를 값싸게 구매하고 가볍게 소비하며 ‘분노사회’를 구축해가고 있지 않은가.'



SNS 상에서 '부모의 재력도 실력'이라는 최순실의 딸의 망언이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새 정부 출범을 도왔다. 이처럼 단순히 끓어오르는 화와 분노는 부메랑에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타자의 입장에 나를 대입시켜 보아야 하며 분노는 변화를 이끌어 낼 무언가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81317&sid1=001&lfrom=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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