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모든 것이 생소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 복도에는 몽둥이를 든 감독 선생님이 돌아다니고 교문에서 복장과 두발을 단속하던 낯익은 풍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갑자기 너무 자유롭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나를 적당히 구속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개강 전 한 학기 동안 수강하게 될 수업을 신청하는 날 동기의 연락을 받고 막 잠에서 깨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느 선배가 그러는데 어떤 과목은 출석만 해도 점수를 잘 준다 하더라. 또 어떤 과목은 시험도 많고 조별 발표까지 해야 하는데 졸라 빡세데! 그러니까 성적 잘 주는 걸로 듣자 그냥" "알겠다, 그걸로 할게" 너무 오래 구속되어 있어서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법을 잃어버려서 일까. 아니면 애당초 그런 건 없었던 걸까.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공장과 다를 바 없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스스로 따져보지도 않고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체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수업을 정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지방대 재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습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대학 시절 나와 주변 동기들과도 매우 닮아있었다.
<성찰적 겸연쩍음>
지방대생은 공부를 통해 인정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특히 지방대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이들을 위축시킨다. 그렇다고 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해도 잘되지 않았던 쓰라린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권리 인정 형식을 통해 자기존중의 길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해도 안 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희망고문하는 뻔뻔한 일이다. 다시 말해 비진정된 것이다. 그건 공안이 아니다. 위선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이러한 에토스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김홍중이 생존주의 세대의 에토스로 지적한 '성찰적 수치심'에 빗대어 '성찰적 겸연쩍음'
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공부에 대한 성공 경험이 드물거나 아예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되는대로 대충하고 만다. 이런 자신의 대응 자세가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도 그때 뿐이다.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목적 수단 범주>
목적 수단 범주를 통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위하고 있을까? 목적 수단 범주로 행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압력이나 내부의 충동 모두를 억누르고 스스로 합리적 계산을 통해 행위해야 한다. 지방대생 여섯 명 모두가 자기계발 압력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기계발 담론, 자기계발 실천, 자기계발 실천 공동체, 지도조직, 자기계발을 위한 규율화된 테크닉을 통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자본과 사회자본 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야 목적 수단 범주를 통해 합리적으로 취업이나 생존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대생은 목적 수단 범주를 통해 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 아직 어리기에 만나 상호작용하는 사람이 가족이나 비슷비슷한 또래 친구로 한정되다 보니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목적 수단 범주를 통해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지방대생 일상의 습속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에 성공하려면 독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독한 방식이 지방대생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는다. 영택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로 보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음…… 못된 사람들이요. 좀 계산적이고, 고집 있고, 영악하고 이런 사람들이…… 욕심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하려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성공한 사람은 모두 못된 사람인가? 아니다.
"흠…… 아! 못됐다기보다는 독한 사람…… 이게 맞는 것 같습니다. (중략) 아니면 좀 똑똑하거나…… 그런 것 같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내가 왜 대학에 다니고 있고 나아가 나의 목표는 무엇인지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 다 가는 대학이니 따라온 것이다. 소외되는 것이 더 무서운 적이다.
<느슨한 관여>
지방대생은 결코 어떤 한 상황에 몰입하지 않는다. 공부에 독하게 몰입해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잘 안다. 노는 것에 심하게 몰입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독하게 몰입하지 않는다.
지방대생은 지금까지 항상 상황에 자신의 주의를 느슨하게 기울이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사적 모임이나 공적인 행사 모두 지방대생은 항상 그것이 요구하는 상황 예절을 느슨하게 수행해왔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지방대생은 그 상황이 요구하는 예절을 느슨하게 수행한다. 중고등학생 때 노는 친구들에게 휩쓸릴 때조차도 소위 '일진'이나 '양아치'가 되지 않는 이유다. 아침 조회나 야간 자율학습과 같은 학교의 공식 행사에 참여해서도 그 상황이 요구하는 예절을 느슨하게 수행한다. 착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범생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상황 예절이란 그 상황에 얼마나 존중을 표하고 있냐는 문제와 연관된다. 그 상황을 존중하라는 요구가 강력할 때, 그리고 마음에서는 그 상황을 별로 존중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자체를 깰 수는 없을 때, 저항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상황 예절을 느슨하게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느슨하게 표현하면, 상황 예절의 심각함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존중하지 않는 상황 예절의 압박 속에서 살아남는 지방대생의 행위전략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말을 할 때 '그냥', '보통' 그리고 '평범'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면 느슨한 관여가 우리의 삶에 깊이 녹아있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우리는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는 법이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다고 인생을 막 살지도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적당히 평범하고 보통인 자리에 터를 잡고 몸을 사리며 살아갈 뿐이다.
<알지 않을려는 의지>
지방대생은 앎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알지 않으려는 의지, 자기계발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기보존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습속의 왕국! 이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알 수 없는 혼돈이 아니다. 습속을 따라 살아가면 세상이 너무나 자명한 사회적 사실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 (중략)
하지만 내가 체험한 지방대생은 <복학왕>에 나오는 인물들과는 다른 모습이 많다. 그들이 너무나 착하다. 그들은 너무나 관계 지향적이다.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고, 그들로 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 싶어 한다.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그렇게 행동한다.
지방대생도 자기계발에 힘쓰긴 한다. 하지만 옆에서 다들 토익 공부를 하니까 나만 소외되어 있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일단 같이 시작하고 본다. 때마침 먼저 사회에 나간 선배들이 조언을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나물의 그 밥, 그 후배의 그 선배이다. 비슷한 류의 이야기만 돌고 돌뿐이다. "토익 하고 복수전공으로 경영학과 수업을 들어라" 후배들은 그런 조언을 자기 입장에 대입해보고 필요 여부를 따져보지 않는다. 그냥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소외될 까 봐 겁이 날 뿐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턴하여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독립심이 없다. 그렇게 그냥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편하다. 그렇게 해도 그럭저럭 살만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 슬펐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엉엉 울고 싶기도 했다. 지방대생이라는 낙인은 살아가면서 불쑥불쑥 나타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방대생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성찰적 겸연쩍음, 느슨한 관여, 목적 수단 범주로 삶을 계획하지 않는 점, 알지 않으려는 의지'등이 이제 뼛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뭐 하나 바꾸기 쉽지 않다. 습관이 되었고 나의 생각과 사고로 까지 뿌리 내리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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