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걷기를 좋아하고 아니 걷기에 미쳐있다. 직접 요리해 먹는 집밥을 좋아하며 그림을 그려 외국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된 직업은 영화배우이면서도 때때로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하기도 하는데 '이 양반은 어딜 내놓아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출연한 영화가 망하거나 감독이 불러주지 않아도 직접 영화를 만들면 그만일 것이고 그것도 변변치 않으면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면 될 것이다. 그것 또한 지겨워서 못해 먹겠다면 그간 집에서 갈고닦은 요리 실력으로 자그마한 집밥 식당을 열어 (이를테면 일본 영화 '심야식당'의 마스터처럼) 고급스럽진 않지만 정겹고 따듯한 음식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줄 음식을 내어줄 것 만 같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걷기로 다져진 체력 덕에 도전하지 못할 일이 없어 보인다.
후배들이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가슴이 아프다. 내게도 당연히 그런 시간이 있었다. 정해진 스케줄도, 무대도 없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만날 사람도 없고, 약속도 없다. 더 가혹한 건 이런 날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무기력과 우울의 늪에 빠지기 딱 좋은 시기다.
그때 나는 우선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몸에 활력이 넘치고 표정도 생생하다. 배우에게 그 첫인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디션이 번개 같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면,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든 잡아채고 싶었다. 오디션은 삼 분 안에 결정되는 잔혹한 경쟁이지만, 보석은 그 짧은 시간에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고 믿었다. 내 몸에 기운과 에너지를 늘 충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막막했던 시절, 헬스클럽만 총 세 군데를 다녔다. 한 군데는 친구 아버지가 하는 곳이라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고, 또 한 군데는 한남동에서 저렴한 곳이 있기에 냉큼 등록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시설 좋은 강남 헬스클럽의 평생회원권을 70만 원에 양도받아서 수시로 나갔다. 누가 보면 흡사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라도 준비하는 배우처럼 악착같이 운동했지만, 사실 그 당시 나에게는 딱히 할 일이란 게 없었다. 별일 없으면 자빠져 있지 말고 걷기라도 하자는 것이 유일한 나의 생활신조였다.
(중략) 밤이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한강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했다. 그때 평균적으로 하루에 여섯 시간씩은 걸어 다녔던 것 같다. 걸으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배우란 분명 선택을 받는 직업이지만, 그 선택받을 수 있는 무대까지 걸어가는 것은 내 두 다리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_'걷는 사람, 하정우' 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 백수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남는 게 시간이었다. 시간은 남아도는데 수중에 돈은 없고 주변 친구들은 나보다 일찍 직장인이 되어 현장에서 사무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던 시기였던지라 같이 놀아 줄 사람도 없었다. 제시간에 가야 하는 학교도 직장도 없으니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기 일쑤였고 그런 생활 패턴 때문인지 낮과 밤이 바뀌어 혼자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가 많았다. 새벽까지 깨어 있다고 해서 공부나 독서를 하거나 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은 한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면서 지냈다. (특히나 OCN 채널을) 사족을 붙이자면 그때 당시 밤늦게 OCN에서 보여주는 영화는 오래된 19금 영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야한 장면이 나올 듯하여 집중해서 보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이었다. 대부분 예상보다 아무것도 없이 시시하게 끝나서 '이걸 보려고 내가...' 하고 한탄을 토해냈지만.
무료한 시간이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남들 잘 시간에 자고 남들이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같이 움직일 필요를 느꼈다. 생활 패턴을 되돌려 보고자 마치 퇴직한 어르신이 아침 식사 후 소화를 시키기 위해 약수터를 가듯 아파트 뒷 산으로 향했다. 당시 궁핍했던 나는 돈이 들지 않고 츄리닝과 운동화만 있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등산을 택했던 것이다.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금방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났다. 중간에 위치한 약수터에는 운동기구가 있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었다. (낮시간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운동을 하면서 정치 얘기를 하거나 아예 판을 벌려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나에게 집 뒷 산은 회원권만 없을 뿐 헬스장과도 같았다. 간혹 같은 입장인 백수 친구가 합류할 경우 약수터에서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매일 집안에 박혀 무기력하게 있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집을 나와 움직이자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밤에 잘 수 있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고 고민이 없어지거나 취직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래와는 다르게 가슴을 뻥하고 뚫어버릴 만큼 시원함을 선사해주고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바탕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내려오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 해볼 만하다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삶에 지치거나 할 때면 '어떻게든 되겠지'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자빠져 있지 말고 우선 나가자!
그리고 몸을 움직이자.
그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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