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수능날이다. 몇 해가 더 지나면 내가 수능을 본 지 20년이 된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쏜 쌀 같아서 생을 소풍이라고 비유하는 것이지 않을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에는 수능 하루 전날에는 고사장에 미리 가서 시험 자리를 확인하고 준비하라는 뜻에서 학교에서 일찍 귀가시켜줬었다. 그날 친구 한 명과 고사장에 들렸다가 일찍 집에 돌아왔는데 그만 거실에서 잠들어 버렸더랬다. (안타깝게도 낮잠을 자면 밤에 제시간에 잠들지 못할 거라는 깊은 생각 따위는 내게 없었다)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었던 터라 깨어 일어나니 몸이 으슬으슬한 게 한기가 돌았다. 감기에 걸린 것이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근무했던 앞집 아저씨에게 부탁해 밤늦게 링거를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다고 낮잠을 자지 않았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수능 만점자들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리고 잘해서 만점을 받은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주 치열하게 준비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점자 중 누군가는 시험장의 책걸상과 동일한 책걸상을 사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시험장과 동일한 환경을 만들어서 익숙해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구는 시험이 다가오자 배탈이 날 것을 대비해 자극적이고 새로운 음식을 피하고 평소 때 먹던 음식인 뭇국만을 계속 먹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기계에도 기름칠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뇌에도 잘 돌아갈 수 있게 기름칠이 필요하다며 언어 영억 시험 전에는 언어 영역 문제를 보면서 뇌에게 '곧 언어영역 시험을 볼 거야. 준비해둬' 미리 언질을 해두고. 외국어 영역 시험 전 쉬는 시간에는 듣기 파일을 들으면서 두뇌가 영어 발음에 익숙해지게 미리 환경을 조성하고 긴장을 풀었다고 한다. 별것이 아닌 것 같지만 고득점자들은 그들만의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까지 해야 해?' 하며 비아냥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시험을 잘 치르겠다는 치열함이 있었던 것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그저 결과만 보이는 법이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했는지,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실랑이에서 버티고, 어떤 과정으로 정상에 올랐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통제하고 남들이 100보 간다면 자신은 1000보를 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던 그들은 만점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치열하고 억척스럽게 매달렸던 그 모든 것들은 쉽게 휘발되지 않고 몸과 정신에 각인되어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리고 비슷한 위기나 목표가 생겼을 때 발판 삼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해서는 역시나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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