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마음대로 'Book Review'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우리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9. 3. 16.
반응형

요 며칠 사이 가수 승리와 정준영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장악했다. 한반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 국민의 시선이 승리와 정준영에게 집중된 듯하다. 덩달아 관련 찌라시도 sns라는 날개를 달고 좀비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클럽 버닝썬 폭행사건이 보도되면서 시작되었다. 연달아 클럽과 경찰 유착, 탈세와 마약, 빅뱅 멤버 승리의 성접대 의혹, 정준영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유포 논란까지 자극적인 사건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끌려 올라왔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까 버닝썬 클럽 폭행사건이 화제가 되고 승리가 도마에 오르면서 모든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 뇌물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있던 이명박이 보석으로 풀려나는 일이 있었다. 변호인 측은 이명박 나이 정도 되면 더러 겪어보았을 법한 병명을 수없이 늘어놓으며 돌연사 가능성이 있다고 보석을 신청했고 법원은 허가했던 것이다. 혼자서는 거동조차 어렵다는 그가 감옥을 나오니 아주 씩씩하게 잘도 걷는다. 곧 테니스 코트에 선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며칠 뒤 공교롭게도 정준영으로 모든 관심이 옮겨가던 그때 전두환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검에서 재판을 받았다. 우병우가 그랬듯 발포 명령자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왜 이래" (몰라서 묻냐 이 XX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참고로 전두환의 배우자 이순자는 모 보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칭했다. 이렇게 배꼽이 달아나도 모를 정도로 웃겨주는데 요즘 누가 예능이나 개그프로를 찾아보겠는가.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방송사들이 1인 방송, 유튜브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복병은 따로 있는 것이다.  







2014년 11월 30일, <세계일보>는 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을 1면에 보도했다. ‘정윤회의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그가 십상시로 지칭되는 대통령의 비서진들을 좌지우지하며 국정에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수사과정에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박관천 경정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최순실이 1위, 정윤회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발언 자체가 너무 황당해서 헛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근거가 무엇인지 정도는 캐물어야 했다. 이 발언을 무시하더라도 최소한 정윤회의 국정개입이 사실인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관련자를 처벌하는 등 국가 기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일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세계일보> 보도가 나가고 닷새가 지났을 무렵, 그 유명한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다. 당시 대한항공 오너의 딸인 조현아 부사장이 승무원에게 땅콩에 대한 올바른 서비스를 교육시키겠다고 하다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장더러 곧 이륙할 비행기에서 당장 내리라고 했던 것이다. 오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기장은 비행기를 돌렸고, 사무장은 비행기에서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재벌 3세, 악녀 그리고 비행기 유턴까지, 한국인 좋아하는 막장드라마의 요소가 모두 담겨 있는 이 사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언론은 모두 이 사건으로 도배됐다. 


(중략)


기껏 징역 1년에 해당하는 범죄에 전 국민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정윤회의 국정 개입 사건은 잊혔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선전지에 불과하다”라고 결론짓고, 오히려 이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행위가 국기 문란이라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문건의 내용이 찌라시에나 나올 만한 황당한 것이라면 문건을 밖으로 유출하는 일이 왜 국기 문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조현아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건 유출의 당사자로 지목된 최 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의혹은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이 쫓겨났다. 그리고 <세계일보>의 모체인 통일교는 세무조사를 받았다. 만약 당시 국민들이 ‘땅콩 회항’ 사건이 아닌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 더 관심을 보였다면, 검찰이 관련 의혹에 대해 제대로 수사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최순실의 존재가 훨씬 더 빨리 수면 위로 드러났을 테고,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고 기업들에게 ‘삥’을 뜯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선별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도록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인 2016년 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일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_서민적 정치



재벌 3세 역할은 연예인이 대신하고 비행기 유턴은 마약과 섹스 스캔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극적인 소스로 범벅이 된 막장이 시작된 것이다. 막장은  다른 막장은 낳을 뿐이다. 정준영과 승리를 감싸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우리가 시선을 돌린 것에 만족하고 있을 못된 놈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 그들의 빅픽쳐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태리에서 수입된 가죽으로 만든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뭐랬어? 드라마 한 편 만드니까 레밍 떼처럼 몰려가는 거 봐. 언론도 우리 편이고 적당히 자극적인 거 조명해주면 개, 돼지랑 똑같다니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말했다.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우리의 삶을 통채로 잡고 흔들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뿌려놓은 자극적인 안개를 걷고 본질을   있는 시야를 가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이 말한 개, 돼지가 되고 말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다시 세상에 나와  우리를 지배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