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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한국 축구라는 신종 '뽕'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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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지만 대부분 스포츠 게임은 확실히 TV로 보는 것이 관람하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좋은 것 같다. 관람석이 좋지 않아 선수들이 개미 같아 보인다던가, 관람 각도가 애매해서 그것이 골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리고 관람 시에는 갖가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옆에 덩치 큰 아저씨가 앉아서 관람 내내 살결이 부딪쳐 불쾌했다던지 뒤에 앉은 남성 팬이 마치 감독처럼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시를 해대는 탓에 혈압이 올랐다는 얘기들처럼 말이다.



얼마 전 출퇴근 길에 '축 부산 국가대표 A매치 유치'류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찾아보니 호주와의 평가전이 부산 아시아드 축구 경기장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구미가 당겼지만 금세 식어버려 티켓을 예매해 두지는 않았다. (보통 새로운 것을 할 때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다. 그리고 보통 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이틀 전 스포츠 뉴스에서 선수들이 A매치를 위해 파주에 소집되어 훈련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언 가 내적으로 흥분이 일었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남은 표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좋은 자리는 전부 매진이었고 2등석과 3등석이 몇 자리 남아있었다. 새로고침을 무한 반복하면서 가까스로 나름 만족할 2자리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반은 한 것이다. 'Well begun is half done!' 많은 걱정이 발목을 잡아도 비행기 티켓을 사고 나면 어떻게든 휴가를 떠나게 되듯 2등석 두 자리를 구했으니 어쨌든 경기를 보게 될 것이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경기장으로 향했다. 8시에 경기 시작이었는데 2시간가량을 길에서 보냈다. 5만 명을 수용할  있는 경기장이라고 들었는데 모두  자가용을 타고   아닐까 하는 정신나간 생각마저 들었다. 경기장은  앞에 보이고 경기장의 함성이 귀에 와서 박히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뺑뺑이를 도는 심정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결국은 경기가 시작하고 20분이나 지나서야 경기장에 들어갈  있었다. 선수들이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관중들의 함성이 버무려져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맥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경기에 집중하려고 했으나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연속해서 혼잣말을 했다. "이게 5만 관중이구나, 이게 5만 관중이야" 옆에서 여자 친구가 듣더니 "아저씨 같은 소리 그만해"라고 말했다. 나는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나기도 했고 단순 A매치에 이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했던  같다. 나는 5만 관중과 하나 되기로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파도타기에   몸을 바쳤다.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오 약간의 알코올과 주변 분위기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붉은 악마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기는 홍철의 크로스를 교체되어 들어온 황의조가 툭 건드려 1대 0 한국 승으로 끝이 났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즐겼는데 약을  것처럼 한  고조된 나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가는   안에서 월드컵 송과 락음악을 틀고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힘껏 따라 불렀다. 남들이 보기에는 약간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리 나는 한국 축구라는 신종 뽕을 맞았는데. 나는 이날 영국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A매치 축구 시합 한 번 본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난리냐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실행하는 것과 실행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깻잎 한 장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뒷 일을 생각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지'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구매 버튼을 눌러 버리면 그 뒤로는 저절로 일이 진행된다. 때로는 devil-may-care (될 대도 되라는) 태도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실행에 옮길 때 보다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선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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