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전의 월드컵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머리 호나우도, 페널티킥에서 똥볼을 찬 이태리의 바조, 고소 공포증으로 비행기를 못 탄다는 네덜란드의 베르캄프 정도가 전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으로만 끝나고 마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었고 4년 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일반인 신분이 아닌 군복을 입은 군인이 되어 있었다. 축구를 꽤나 좋아했던 터라 담배와 소형 라디오를 몰래 숨겨 근무지에서 축구 중계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0년, 이쯤 되면 어디에서 개최를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남아공이 개최를 했다는데 선수들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만큼 소음이 심했던 응원도구 부부젤라가 떠오르고 집 근처 2층에 자리 잡은 호프집에서 예전 여자 친구와 친구네 커플이 같이 그리스전을 응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박지성이 과감한 돌파로 멋진 골을 만들었고 양손으로 원을 그리는 세리머니를 했었지 아마.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학생활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한지 햇수로 4년 차가 되었다. 요란 떨 것도 없이 그저 그런 실력으로 그저 그런 회사를 어렵지 않게 들어가서 그럭저럭 다니고 있을 때다. 2018년 월드컵 개최국 러시아와의 경기가 딱 출근 시간가 맞아떨어져 차 안 조그마한 네비 화면을 보면서 출근을 했었지. 이근호가 골키퍼를 향해 중거리 슛을 날렸고 골키퍼 정면으로 볼이 날아가 어렵지 않게 막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골키퍼는 양손을 이용해 잘 막고도 골을 그물 안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더랬지. 시간이 흘러 '이근호와 러시아 골키퍼가 친척 사이가 아니냐'하는 일부로부터 비아냥을 사기도 했지만 골을 넣은 그 순간만큼은 괴성을 지를 만큼 극도의 흥분상태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 많이 남았네 하며 잊고 지냈었는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첫 본선 경기인 스웨덴 전이 열흘 앞으로 불쑥 다가와 버렸고 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보다 4년 더 늙어있다. 2002년 월드컵만 해도 너무 젊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할 때였다. 이탈리아전 연장전 승부 끝에 안정환을 헤딩골로 역전승을 거두었던 그날 친구들과 지나가는 트럭 뒤에 올라타서 밤새 '오~필승 코리아와 대! 한! 민! 국!'을 외치며 응원했는데 이제는 새벽 시간 경기는 보아야 할지, 평일인지 주말인지를 살피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에도 결코 16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기대가 적으면 후회도 적으려나. 나는 이렇게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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