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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적절치 않은 타이밍에 오는 것들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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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은 진즉에 채웠고 이제 10개 들이 작은 한 판도 무서운 속도로 채우고 있는 요즘 '삶이라는 것은 결코 내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하는 옛날 사람들의 말씀이 이제야 와 닿는다. 나이를 먹어도 덜떨어진 말과 행동은 계속되고 다양한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도 여전하며 매번 새로운 문제에 고개를 떨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늘어가는 나이에 반비례하게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고 만남과 관계 유지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언제가 찾아올 이별에도 대비를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드는 요즘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또 주변 지인이든 우리는 언제 가는 헤어지게 되어있으니까. 


 


죽음이 꼭 이렇게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창 재미있을 때, 막 뭐 좀 해보려고 할 때, 이제 겨우 할 만하다 싶을 때... 죽음이 몇 살에 오든, 쉰이든 예순이든 아흔이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제 막 딸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이제 겨우 손주 봤는데, 이제야 은퇴하고 하고 싶은 일 좀 해보려는데 죽음이라니...(중략) 가까운 사이일수록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나는 하필 이때 암 판정을 받은 게 아니었다. 언제 찾아와도 '적당 할 때 왔네'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도 그럴 것이다. 전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갑자기 올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같은 때.

 

_ 장수연 PD brunch 중에서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일찍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나이 일흔이면 약간 과장해서 한창 때라고 비아냥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하고 풍족함을 경험하지 못한 채 시골에서 한 평생 고된 농사일로 삶을 일구어 오시다가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 서예학원에서 붓글씨를 연습한 화선지를 챙겨가 보여드리면 흐뭇해하시던 할아버지는 끝내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몸 건강히 국방의 의무를 다한 후 사회에 나와 밥벌이를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시지 못했다. 게다가 불과 몇 해 전에 건강검진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어 아버지까지 수술대에 오르셨다. 드라마에서만 일어날 것 같았던 일이 나랑은 무관할 것 같았던 일이 하나 둘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이때까지 본인을 위해 돈 한 푼 쓰지 않았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소소한 취미도 결국에 돈이라면서 마다하시던 아버지한테 말이다. 언제와도 괜찮은 타이밍에 왔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고개를 들이밀어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듯 이별을 한 후에야 옆 사람의 부재를 알아차리는 게 보통이다.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는 그 후회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줄여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이되었든 미루지 않고 현재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카메라 렌즈 앞에 서는 것이 닭살 돋고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나중으로 미룬다면 과거를 추억할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것이 뻔해서 어색한 미소로 핸드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려본다. 가족과의 나들이나 주말 저녁 식사자리 역시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빠지지 않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노력 중이다. 나 자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좋아지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하고 온갖 핑계로 미뤄 왔던 것들을 가급적이면 지금 당장 하려고 애쓴다. 행복은 젊은 날에 다달이 차곡차곡 모아 더 나이 들어 적금 찾아 쓰듯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못하면 나중에도 행복은 없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지금의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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