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서는 목표로 삼을 지형, 지물 같은 것이 없어서 앞으로 똑바로 걷고 있다고 해도 알고 보면 원을 그리듯이 출발했던 지점 주변을 계속 맴돌게 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분명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씩 틀어져 결국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이 되는데,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좌, 우 어느 한쪽 방향으로든 1도씩만 계속 틀어진다고 가정할 때 180걸음 이후에는 출발 방향과 역방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막에서는 'GPS, 나침반' 등의 도움이 없다면 시간이 지나도 같은 장소를 배회하게 되며 물과 그늘을 애타게 찾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화 '백 엔의 사랑' 여주인공 이치코는 하는 일 없이 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어린 조카와 게임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백수다. ‘망할 전문대 졸업자, 편의점 야간 알바, 100엔짜리 여자(100엔 샵을 자주 이용해서?), 여자이기를 포기한 사람, 게임 중독자, 패배자’와 같은 대명사들이 그녀를 따라다닌다. 인생을 열심히 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야속하게도 시간이 흘러 32살의 나이가 된 지금 사회에서 말하는 괜찮은 성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는 자신이 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 조금씩 나아지기는커녕 제자리를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기분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성공 경험이 없다. 연애 한 번 한적 없는 모태 솔로인 데다가 그럴싸한 학벌도 고만고만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다. (그러고 보니 나와 공통된 점이 제법 있다. 이 정도면 무기력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권투를 배워 시합에 나간다. 뭔가에 이렇게 열심히 인적이 없었는데 서로 죽일 듯 치고받고 마지막에는 승패를 떠나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행동이 그녀를 사로잡은 듯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시합이 끝난 뒤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패배자는 말한다.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는데...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는데..."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결코 관대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기억보다 상처만 남길 것이 뻔하다.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가 가져온 패배감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도 우리는 상처 투성이 몸을 이끌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살아갈 힘은 어디서 얻는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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