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하는 후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째는 한 일에 대한 후회이며 두 번째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이다. 같은 후회이긴 하지만 후회의 정도는 다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우리에게 더 큰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완벽'이라는 강박에 발목을 잡혀서 인듯하다.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 '조금 더 준비하지 않으면 안 돼' 같은 생각들이 우리의 시작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정작 시작하고 보면 '해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은가. 시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결과가 어떨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정치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의 전공은 미학이다.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비행기 값이라도 벌어볼까'하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석사를 마친 상태였으니 서른쯤 되었으려나. 그렇게 '상가 건물 2층의 게딱지만 한 방에서 자판기 커피로 밤을 달래 가며 286 컴퓨터로' 써낸 글이 3권짜리 '미학 오디세이'였다. 지금은 우리나라 미학 대중서의 고전이 되어버린 책,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판본은 '20주년 기념판'이다.
독일에서 열심히 공부한 진중권 교수는 철학과 예술에 대한 글을 수두룩하게 쏟아냈다. 평생 쓴 원고들을 탁탁 쌓아서 노끈으로 척척 묶으면 아마 자동차 트렁크쯤은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일해온 동안 분명 지식은 깊어지고, 사고는 넓어지며, 필력은 늘었을 텐데 그는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책을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몇 차례 이 책만큼 대중적인 책을 써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시절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됐을 때의 황홀한 기쁨은 다시 반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많이 알고, 더 깊게 알고, 더 잘 쓸 수 있는데도 '이런' 책을 다시는 쓸 수 없을 거라고? 실력이 더 쌓이고 준비가 더 잘된 뒤에 시도하면 당연히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도전을 자꾸 뒤로 미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진중권 교수는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잘 모를 때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미학이라는 학문에 갓 입문한 그때는 나 역시 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독자가 어느 부분을 어려워하고 어느 부분을 재밌어하는지 굳이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미학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천진난만함은 사라지고 독자와 소통의 접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중략)
그러므로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그것에 대해 많이 알게 될 내일이 아니라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는 오늘이 아닐까? 완벽한 내일이 아닌 초라하나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의 서문은 이렇게 끝은 맺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나만은 영원한 소년일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은 아무도 비켜 가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청년의 몸속에 지금은 쉰을 넘긴 중년의 사내가 들어앉아 있다. 지난 20년의 세월이 버스에서 잠깐 졸면서 꾼 꿈만 같다."
_한재우,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우리는 '완벽'을 바란다. 나는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모든 일에 실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완벽한 삶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며 무시하는 태도이다. 100% 순금이 존재하지 않듯 완벽이라는 것은 사막의 신기루와 다르지 않다. 완벽이 삶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삶이며 수많은 도전 앞에 서있는 우리가 첫 발을 내딛지 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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