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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Book Review'

엄마의 눈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읽고)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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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 할머니가 자주 보인다. 유튜브는 물론 블로그, 심지어 팟캐스트까지 '박막례' 할머니 얘기로 가득하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가신다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박막례, 이대로 죽을  없다'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젊어서부터 자식들 키우느라 막노동부터 장사 그리고 식당일까지 수십 년 동안 안 해 본일 없는 할머니는 어느 날 병원에서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손녀는 그 소식을 듣고 퇴사 후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와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호주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구끼리 돌려볼 목적으로 유튜브에 여행 영상을 올렸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손녀와 할머니는 일상생활 영상과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영상 등 여러 콘텐츠를 만들어 포스팅하는데 올리는 것마다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할머니는 해외 생전 처음 보는 해외 여행지 풍경 앞에서 "세상에 뭐 이런 데가 다 있댜?" "오메!!! 여기 못 보고 죽은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나"를 연발하시며 그간 본인 삶이 고단해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품을 수 없었던 과거를 안타까워하시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본인의 외할머니가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시고 사고를 많이 치셔서 젊었을 때 고생한 것도 주인공 할머니와 아주 비슷하다. 할머니 자신을 삶에서 지우시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을 사신 할머니. 해외여행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을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루라도 몸을 쉬게 두는 법이 없다는 것이지 않을까. 시골은 도시와 달리 주변에 할 일이 넘친다. 본인의 끼니는 넘기더라도 가축들 밥은 챙겨야 한다. 하다 못해 밭에 난 잡초라도 뽑아야 한다. 자식들이 일 그만하고 제발 좀 쉬어라고 해도 결코 몸을 놀리는 법이 없다. 키운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캐기도 하신다. 오랜 세월 무거운 짐을 이고 일하셨던 터라 둥글게 휘어버린 앙상한 다리는 가녀린 본인의 몸 조차 지탱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유모차에 의지한 채 멀고 험한 길을 자신의 속도로 오고 가신다. 



얼마 전 시골에 다녀오신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왜 그러냐고 여쭈어보니 외할머니가 너무 불쌍하다면서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운 겨울 밤늦게까지 밖에서 굴을 까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고 하셨다. 옷은 군데군데 젖어있었고 닳아 찢어져  역할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고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연세도 있으시고  그간 고생하였으니 이제는 일을 하지 않고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을 것이다. 본인은 이 날 엄마가 흐느끼며 우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방학이 되면 형과 나는 시골에서 지내곤 했었다. 장날이 되면 할머니는 형과 나를 데리고 가서 내복과 양말 그리고 간식거리를 사주시곤 했었다. 그땐 할머니도 꽤나 기력이 넘치셨던 것 같다. 장에 따라갔던 어린이는 청년을 지나 이제 중년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우리 할머니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다. 자식들 생일날은 까먹지 않고 전화하셔서 찰밥에 미역국을 끓여 먹었냐고 묻고 하셨는데 이제는 더 이상 생일날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할머니의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청력까지 감소하여 큰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전화 통화까지 쉽지 않다. 저녁시간에 하는 TV 연속극을 좋아하셨는데. 연속극에서 부부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고 "저 둘은 진짜 부부제?" 하고 재밌는 물음을 하셔서 아니라고 대답하니 부부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있냐며 "아이구야 희안타 희안해"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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