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늘 우리 옆에 있어왔다. 문제 하나를 풀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풀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인생을 문제의 연속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시험문제가 되었든 취업과 결혼 문제가 되었든 나이를 먹어가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정해진 답을 찾는데 꽤나 익숙하다. 시험문제를 풀 때는 나름의 공식과 요령을 동원해서 정답을 찾아나가고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에는 먼저 산 사람들의 조언이나 경험을 발판 삼아 그 답을 찾아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여 수면으로 꺼내는 것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어 보인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정해진 시간 내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정답만을 찾길 원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고,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 조차 가져 본 적이 없다. 뭔가 아주 긴 세월 동안 뚜렷한 명목도 없이 허구를 쫓아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보통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 문제 해결의 차례를 거친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은 수동적인 행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능동적이고 동시에 적극적인 의사가 반영된 행위이다. 발전의 가능성은 새로운 문제의 발견에 존재한다. 여기서 문제의 발견을 '왜'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왜왜왜' 이 질문에서 문제는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왜'에 악착같이 매달리면 문제의 발견과 더불어 남의 답이 아닌 진정한 나의 답을 얻지 않을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81&aid=0002860533&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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