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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Book Review'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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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실 바닥에 기대어 TV를 보는데 화면이 끊기기 시작했다. 


잠깐 이러고 말겠지 생각했지만 끊김 현상은 계속되었고 혹시나 하여 셋탑박스 전원을 껐다 켜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SK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어 고장 접수를 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고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상담원과 연결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나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혹 상담원이 이전 고객과의 상담으로 인하여 연결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금방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일요일 오후, 당직 근무 기사 분이 오셔서 셋탑박스와 케이블 선 교체 작업을 했다. 화면이 잘 나오는 것도 잠시 간헐적으로 화면이 멈추는 증상은 계속되었다. 머리를 긁적긁적하던 그는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명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월요일에 다시 고장 신고를 하면 담당 기사분이 배정되어 수리를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분의 핸드폰 메인화면이 아이들 사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한 가정의 가장임을 알 수 있었다. 주말에 애들과 놀아주지 못하고 당직 근무를 하는 것이 안돼 보였다.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원하는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센터 직원과 토요일 재방문 약속을 잡았다. 보통 기사 분들은 방문 전에 전화를 걸어 곧 방문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데 여름인지라 팬티만 입고 쉬고 있는 나는 최소한의 걸칠 것듯을 찾아 입어야 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인데 여러모로 정말 귀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기사 분은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셋탑박스를 다시 점검하고 메인 허브가 있는 4층과 9층 집을 여러 차례 왕복하며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끊김 현상은 없어지지 않았다. 같은 라인 다른 가정에서 고장 접수 건이 없는데 유독 우리 집에서만 끊김이 발생해 난감하다고 하였다. 


예전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통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에 대해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서비스직인 만큼 웃는 얼굴로 모든 손님에게 친절히 대해야 했지만 정작 손님들은 그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 일수록 알바생에게 '담배 한 갑 줘봐, 이거 얼마야?'와 같이 반말을 하기 일쑤였으며,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싸냐'등 터무니없는 것들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이건 편의점 알바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그 스트레스는 집에 귀가해서도 계속되어 밤잠을 설치게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세 번이 넘게 수리하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끊김 증상이 계속되는 걸 확인하고 기사 분께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과 할게 여전히 끊김 증상이 있다고 정중하게 설명했고 다른 해결책은 없는지 물었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도대체 몇 번째 방문인데 아직 수리가 안 되는 것이냐.'라던지 아주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기사 분들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더운 날 무거운 장비 가방을 들고 방문하는 기사 분께 기껏해야 차가운 음료나 물 한 컵 대접하는 게 다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처럼 똑같은 인격체로 존중받고 대우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직 TV 화면은 버벅되지만 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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