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 도착한 방콕 수완나품 공항,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린다. 오징어처럼 흐물 되는 몸을 이끌고 수속을 위한 긴 행렬에 합류한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비행기가 꽤 있었는지 수속을 밟고 수화물을 찾으니 한 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속으로 혹시나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기 어려울까 봐 숙소를 예약하면서 공항 픽업 서비스도 신청해둔 것을 백번 잘 했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인 gate 3번으로 가면서 현지 가이드나 기사분들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응시했다. 중국 관광객이 많은지 한자 이름이 많이 보였고, 영어로 적힌 한국 관광객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기사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짧지 않은 비행시간과 낯선 땅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야간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동남아의 날씨 등의 요소가 한데 버무려져 스멀스멀 짜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메일로 받은 기사님의 연락처는 있었지만 전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airplane mode를 풀고 해외전화를 시도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기사분은 30분이나 늦게 나타나셨다. 이럴 거면 그냥 택시를 탈걸... 귀국하는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택시 비용이 무려 절반이나 저렴했다. 하지만 여행 중에 이런 생각은 계속하면 정신건강에 무지 해롭다. 이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영화 '내 머리 속에 지우개'에서 손예진 아버지가 유부남과의 만남을 정리하고 상처받은 손예진한테 ‘빨리 잊는 것도 능력이다 너’와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안 좋은 일을 계속 안고 미래의 일에 영향을 주는 것보다 얼른 잊어버리는 게 좋다. 꼴에 여행을 몇 번 해보았다고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수화물을 끌고 게이트를 나선다. 불쾌지수 50% 정도는 거뜬히 올려줄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공항 gate를 나서며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Isanook residence로 저렴한 가격에 깨끗한 시설, 게다가 풀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 휴양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픽업 서비스는 구글링을 통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해서 픽업 서비스 신청 의사를 밝혔고 추후 구체적인 약속 시간과 장소는 email로 주고받았다. 가격은 THB 600이다. http://www.i-sanook.com/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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