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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Bad day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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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 날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꽤 먼 곳에서 식이 열린다. 새벽부터 일어나 지친 몸을 이끌고 가는 내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친가 쪽 행사이다 보니 모든 준비에 적극적인 것은 아버지다. 듣자 하니 아버지를 일찍 여읜 신부(사촌 여동생) 옆에서 아버지가 같이 식장으로 입장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이발과 염색을 하셨구나.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외가 쪽 행사에 이런 수고스러운 무언가를 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식장으로 가기 전 나의 복장을 지적하기까지 하셨다. 역시 외가 행사에서 들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보통 같으면 내 차를 타고 이동하겠지만 그다지 당기는 행사가 아니었기에 기름을 넣어 놓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내차를 타고 가지 않겠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어머니 차 뒷좌석 승차감은 최악이었다. 과장을 심하게 해서 마치 1톤 트럭 뒤 쇠창살로 둘러싸인 케이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식장에 도착해서 사촌들과 말을 섞지 않으려고 어슬렁되는데 사촌 동생과 축의금을 받고 식권을 나눠주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여기서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사촌 여동생이 소방서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어디 어디 소방서라고 적힌 축의금이 많이 들어왔는데 옆에 있던 동생이 ‘행님 역시 직업이 좋으니까 축의금도 많이 들어온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봉투의 대다수가 3만 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이 짓을 당연시 여기는 걸까’ 내가 보기엔 축하다운 축하는 찾기 어려워 보이는데 말이다.


역시 뷔페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일관성 있게 형편없기도 어렵지 않을까. 하객이 입장이라면 만원을 받아 밖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 게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좋아 보인다.


돌아오는 길 한숨으로 뒤범벅된 뒷좌석 그리고 나의 하루는 끝이 나버렸다. 

그렇게 형편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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