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되는 그 찰나에 외국에서 건 전화가 아닐지 만약 맞다면 난 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업무 중 보통 참을성 없이 전화 연락을 주는 곳은 바로 '인도, India'였다. 통화 중 배경 잡음도 심했지만 인도식 영어 발음과 특유의 억양(발리우드 영화를 생각해 보시라)은 더욱더 나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눈뜨고 코를 베일 수는 없었다. 개선이 시급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기존에 고수하던 영어 공부 방식 (라디오를 들으며 영화 대사를 따라 읽고 팝송을 부르는)을 내려놓고 기초회화 (두 인물 A와 B가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는)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총 100 과로 구성된 책으로 하루에 한 과를 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목표와 다짐은 깨지라고 있는 법, 나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탓인가 여섯 문장으로 구성된 한 과를 매일 같이 외우는 것은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회식을 한 다음 날에는 꼭 빼먹기 일쑤였고 책상에 앉아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입으로는 소리를 내며 문장으로 외우고 있지만 딴생각에 사로잡혀 시간만 축내고 있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김민식 pd 블로그 '공짜 영어 스쿨'을 참고하였다.
나는 pd님이 주최하는 '댓글부대' 1기 부대원이기도 하다.
http://free2world.tistory.com/m/category/공짜%20영어%20스쿨
학창 시절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속으로 외며 큰마음 먹고 수학 정석 책을 펼쳐서 첫 번째 단원인 '집합'을 열심히 공부했던 적 다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도 약빨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시들해지고 만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새 마음 새뜻으로 첫 단원 집합 부분만 공부했기에 결국 연필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은 '집합' 뿐이었던 씁쓸한 기억...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 영어 암송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를 나의 머리 속 깊숙이 각인시켰다.
첫 번째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1 과를 완벽하게 못 외우더라도 1 과를 계속 외우기보다는 다음날에는 2 과로 넘어갔다. 그렇게 한 바퀴 1~100과까지 완주했다는 성공 경험을 스스로에게 선사한다. 그 후 약간의 보상(선물)과 함께 다시 1~100 과를 암송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 자신이 1과에서 100과까지 완주했다는 성공 경험은 앞으로 더 지난한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다.
두 번째 '중간중간 쉬어 갈 수는 있어도 도중하차는 없다' 피곤하거나, 중요한 약속 등의 이유로 그 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였을 경우 '나는 벌써 목표로 했던 하루 한과 외우기에 실패했어, 끝난 거야', '내가 이렇지 뭐'하고 낙담하기보다는 '그래, 그럴 수 있어', '오늘은 쉬고 내일 해보자'라는 자세로 암송에 임했다. 온갖 잡생각에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을 때도 물론 있었다. 그럴 때는 일주일이 넘게 손을 놓은 적도 있었지만 충분히 마음을 추스르고 트랙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달렸다. 결국 영어는 단시간에 결정 나는 100m 단거리 달리기 경기가 아닌 42.195km를 자신의 페이스에 맞혀 달리는 마라톤과 닮아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그래서 속도가 느리고 도중 넘어지더라도 어떻게든 결승선을 통과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위의 책 dialogue 1~100과를 외웠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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