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절반이 손바닥에서 모래알 빠져나가듯이 지나간 지금, 올해 읽었던 책 중에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이숙명 작가의 ‘혼자서 완전하게’를 선택할 것이다. 어느 책 소개 팟캐스트에서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작가의 추천으로 E-BOOK로 대여하여 읽게 되었는데 여운이 깊이 남아 종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회사 욕, 주변 사람들 욕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자기비하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몇 년째 한발 짝도 못 내딛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과의 술자리, 선배들의 조언 등은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 그렇지 뭐”라는 류의 대답이 돌아왔고, 주체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뱉어버린 막말에 쉬어버린 목과 숙취만 남아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을 뿐.
그래서 이제 답을 얻었고 갈증이 해소되었냐고 물어본다면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을 하지는 못 할 것 같다. 불안한 건 여전하고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듯이 ‘거창한 결과 따위는 접어두고,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재지 말고 그냥 한 번 해 볼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내가 남이 아닌 스스로 결정 내려 얻은 피드백이 데이터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이때까지 남의 인생을 살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나 요즘 네가 부러워."
'결혼하면 아파트 살아야 할까요?"
"어른들 뜻에 따라야 하는 걸까요?"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창작을 하고 싶어요. 회사는 어쩌죠?"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진지한 건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행복을 감추고 불행을 과장하고 예의상 자조하는 한국인의 언어습관을 고려하면 그냥 해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듣는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들,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를 고백하는 말들에 위화감이 들곤 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위기의 순간이 닥친다. 그중 어떤 것들은 정말로 심각해서 친구의 위로보다는 좋은 의료진과 기적의 치료제, 공적자금 지원, 경찰, 변호사 혹은 헌신적인 자원봉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밖의 대부분은 대개 현실이 불만스럽고 뭔가 다르게 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는 고민이다. 즉 '내 맘대로 못 살아서 불행하다'는 말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할 수 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대부분 결정 과정에서 순서가 뒤바뀌는 오류를 겪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건너뛴 채 "내 맘은 이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를 잘 모르니까 막연히 남들이 좋다는 거, 누가 시키는 거, 남이 욕망하는 걸 흉내 내고, 그 욕망이 내 것인 양 착각하며, 내게는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들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경하고 질투한다. 그런 바람은 어쩌다 실현되더라도 '어머, 이 산이 아닌가 봐'라는 후회를 남긴다. (중략)
우리는 많은 순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을 한다.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것부터 일과 사랑, 결혼, 등 인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자신의 욕망을 파악하고 나서도 간혹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날 대책을 세우기보다 걱정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술만 마시면 똑같은 회사 욕, 가족 욕, 친구 욕으로 주변을 괴롭히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서도고 이게 될지 안될지 점집이나 찾아다닐 뿐 도무지 해결책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중략)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건 우리 자신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를 시도해보지도 않고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게 사소한 집안일 같은 거면 괜찮은데,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도 끊임없이 결과를 지레짐작하면서 욕망을 회피하고 무의미한 일에 매진하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시도하기 전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중략)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도도 해보지 않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하다'와 '되다'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어는 독립영화감독을 인터뷰할 때다. 보통은 영화를 하고 싶으면 시험 쳐서 영화과 진학부터 하던데 당신은 무슨 배짱으로 덜컥 월세 보증금 빼서 영화부터 찍었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영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거겠죠. 하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되고 싶어 하니까 문제인 거예요. 성공한 누군가를 동경하면서요. 당장 내가 가진 걸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한심해요. 그들이 가진 것도 그리 대단한 게 없거든요. 좀 잃으면 어때. 인생에 '안정빵'이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 이건 안전한 길이다 생각해도 얼마든지 망할 수 있어요. 그럴 바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게 낫죠." 거창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당장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우리를 불만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교통편은 그것뿐이다.
'혼자서, 완전하게' epilogu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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