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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Book Review'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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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가 군대에 있을 적 검문소 근처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요양원에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분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중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께 식판에 밥을 차려 들어가 떠먹여 드리면서 심심하지는 않은지, 몸은 불편하지만 나가서 놀고 싶지는 않으신지 하고 물었더랬다. 




"나는, 열일곱에 시집을 갔거든. 그때부터 놀아본 적이 없어. 젊어서는 시부모님 모시느라 놀질 못했어. 아침 챙겨드리고 밭에 나가 온종일 일하다가 들어와서 다시 밥 차려드렸지. 그렇게 일만 하다 자식을 낳고서는 자식들 키우느라 놀질 못했어. 애를 낳고도 쉴 수가 있나. 등에 업고 밭일 하고, 또 밥 차리고, 다시 또 일하고. 시부모님 돌아가시고도 남편 뒷 바라지에 자식들 수발에 하나도 놀지를 못하고 일만 하다 늙어서 이렇게 돼버렸어."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마음은 아직도 열일곱이야. 몸은 이렇게 괴물이 돼버렸는데, 마음은 아직도 열일곱이야."

(중략)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보드랍고, 주름진 손이었다. 솜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젊은이도. 놀아."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치 숨겨진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놀면 큰일 나요. 엄마한테 혼나."하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젊어서 놀아야 해. 안 그러면 나처럼 돼."


그녀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놀아."


(중략) 


내 손을 먼저 잡아보겠다고 싸움을 하고, 나와 얘기 한 번 하려고 눈치를 보던 그 늙은 소녀들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 시간이 멈춰버린 채 살아야 했던 그녀들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와 그녀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의 몫까지 놀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금강산은 못 가지만,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계곡으로 평야로 항상 그녀들을 기리며, 그 몫까지 필사적으로 놓아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그러니, 당신도.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중에서_ 김보통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현업에서 물러나게 되면 갑자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덩달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 된 것이 아닌가'하는 부정정인 생각도 따라다니는 경우가 있다. 이때까지 본인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피땀 흘려 일 만 했던 보통의 아버지들에게 이 시간은 지옥과 다름없다. 집에서는 하는 일 없이 세끼 밥만 축낸다고 해서 ‘삼식이’로 불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눈치에 시달리기도 한다. 평소에 시간을 내어 놀아 본 적이 없으니 은퇴 후 당장 넘쳐나는 게 시간이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료함에 포위되어 버리는 것이다.  


놀아 본 놈이 놀 줄 안다. '나중에 주말에,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중에 취직만 되면, 나중에 은퇴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불행할 가능성이 많다. 그 무수한 '나중에'가 모여 나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지금 부터라도 나중은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자. 


인생은 한방이 아니다. 그간 쌓여왔던 경험의 합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역치 이상이 쌓여야 변화가 감지된다. 변화는 갑자기 나타나 '똑똑' 노크하지 않는다. 평소에 본인 의지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사람일수록 주어진 시간 앞에서 무료해지고 행복과는 멀어질 뿐이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놀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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