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매할 때 가격이 얼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책 가격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어떤 내용으로 채워졌는지 훑어보지 않고 마우스 커서를 구매 버튼 위에 올려놓게 만드는 몇몇 작가분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김보통 작가입니다. 김보통 작가의 만화와 글을 읽을 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떠오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고 열심히 살다 보면 다 잘 될 거야'라고 결국엔 해피엔딩, 무한 긍정으로 꾸역꾸역 달래기보다는 '인생이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묵묵히 걸어갈 뿐(살아갈 뿐)'이라는 메시지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이 두 사람 작품의 공통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했다. 할머니가 손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 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몇 가지 예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라거나, 할머니는 다 알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의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 있다.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가 알려주려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 까.
_언어의 온도, 이기주
김보통 작가는 과거에 꽤나 많이 아파 보았던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깃털처럼 가볍고 어설픈 위로를 건네며 어깨를 두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니깐요.'
김보통은 엄살쟁이입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금세 울며 힘들다, 못 해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군대에서는 고참이 때린다고 전화로 고자질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다니는 내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엄살쟁이여서 아직 살아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아프다고 말하세요. 죽을 만큼 힘들면, 죽지 말고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세요. 죽을 걸 각오하고 해야 하는 일은 없어요.
_이재로(김보통의 모친)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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