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렸을 적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 정차역에서 엄마를 따라 내리지 못하고 헤어진 적이 있다. 일찍부터 직장 생활을 하셨던 엄마는 간혹 나를 데리고 일을 보시곤 했는데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로 들어갔고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때만 해도 흔했던 음료 자판기에서 조그마한 자갈 모양의 얼음이 둥둥 떠있는 탄산음료를 뽑아한 손에 든 채였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내려야 할 역에서 엄마를 따라 내렸어야 했는데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나 혼자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어쩔 도리가 없던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찾으며 울어 됐고 옆에 있던 남성 한 분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때 나는 울면서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라던지 "엄마가 없어졌어요" 정도의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그 남성분은 친절하게도 다음 정차역에 내려서 역무실로 날 데리고 갔다. 그리고 역무원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다급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가 역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엄마"하고....
며칠 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아흔이 넘은 이금 섬 할머니(92세)는 이제 부축 없이는 거동이 힘들다. 누구를 만나러 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들!"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씀하신다.
"아드님이랑 어떻게 헤어지셨어요?"
"아들.. 4살에 헤어져서 이제 (아들 나이가) 71인데, 이제 만나요."
"피난 나오면서.... 자기 아빠가 업고 나오다가, 나는 아기 업고 나오다가 갈라졌지..."
"아드님 이름이 뭐예요?"
"이상철!"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가... 나 없으니까 누가 키웠는가 그런 거 물어보고 싶어요..."
"아드님 얼굴은 기억이 나세요?"
"안 나요, 4살 때인데 어떻게 나..."
상봉 당일 날 이금 섬 할머니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들을 알아보고 아들을 향해 "상철이야? 상철이 맞니?"하고 물으신다.
"아이고, 너 죽은 줄 알았지. 상철이 어떻게 살았어...."
우리에게 엄마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한 다 하나뿐인 존재다. 아흔의 할머니가 일흔이 넘어 주름진 아들을 부둥켜안고 얼굴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댐의 수문에서 강물 흘러나오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 살이면 현재 나의 조카 나이와 같다. 가끔 형네가 볼 일이 있어 조카가 할머니 집에 맡겨질 때면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다가도 이내 창 밖을 바라보며 엄마가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창밖을 계속 응시하며 눈시울도 붉어진다. 네 살은 그런 나이인 것이다. 그 어린것이 엄마 없이 살아왔을 수십 년의 세월은 얼마나 야속했을까 감히 어설프게 헤아려 볼 수 없다. 엄마의 따스한 품, 엄마의 냄새 그리고 엄마의 어루만짐, 엄마의 모든 것과 단절된 삶은 평안,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2.3초 보다 짧게 느껴졌을 2박 3일간의 짧은 상봉이 끝나갈 무렵 버스 밖에서 손은 흔들며 인사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잘 살아..."
우리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어 부수적인 문제가 더 많은 지금이다. 마음만 먹으면 가 닿지 못할 곳이 없다. 그것이 지구 반대편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이산가족들에게는 아주 요원한 얘기일 뿐이다. 넘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 가족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생사라도 알고 싶다는 이산가족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있다. 무엇이 이들의 만남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말았는지 이렇게 힘들고 늦어지게 만들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삼대 세습과 핵이 문제일까. 선거철만 되면 흔들리는 표심을 잡기 위해 없는 간첩을 만들어 내는 일부 고위 지도층이 문제 일까. 북한으로 보내지는 옥수수, 밀가루 그리고 소를 보며 아까운 세금이 저리로 다 간다며 혀 끝을 차는 이웃 아저씨일까. 아니면 그간 별 관심도 없었던 나 자신 일까.
반성하자. 그리고 또 반성하자.
하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저들이 떨어져 생사도 모르고 지내게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