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의 잦은 습격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하늘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 가을 하늘은 이쁘다. 세계 어느 나라의 그것 부럽지 않다. 요즘 매일 모양을 달리하는 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과거가 되어 자취를 감췄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좋은 것은 항상 짧고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기에. 그렇게 또 겨울이 오겠지. 한 해를 사등분했을 때 이제 마지막 한 조각의 부채꼴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회사 상사 중 한 명은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해도 다 갔네"라고 얘기하곤 했다. 10월이 되고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를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빼박(누가 뭐라 해도) 아저씨 줄에 들어선 현재의 나에게 있어 '시간'은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어떻게 하면 이 유효한 시간을 버리는 것 없이 잘 쓸까 매일 고민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숨과 함께 잠들고 깨고 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이른 아침 알람이 울리게 해두지만 언제나 그렇듯 손은 뇌의 지령보다 빨리 핸드폰 알람을 꺼버리고 만다.
군 복무 중 목포에 살았던 한 선임병이 "점심을 먹으면 하루가 다 간 거야."라고 말할 때 마지못해 기합을 잔뜩 넣어 "그렇습니다!"하고 답하고 했는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말이 대단한 '진리' 비슷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휴일 전날 늦게 잠들어 다음날 점심때가 다되어 일어나면 하루가 너무 짧아 공허하고 무료함에서 벗어 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이모양이다.
각자의 리듬으로 계절을 잘 건너가세요.
속도와 방향을 선택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자신의 리듬마저 포기하면 참 많은 걸 잃게 되는 것 같아요.
_이기주 Instagram
연휴 끝무렵이면 늘 슬퍼하던 아이에게 해줬던 얘기입니다. "1년 치 떡 365개가 담긴 상자를 안고 사는데 그 안에 휴일만큼의 꿀떡과 평일만큼의 썩은 떡이 들었다고 여긴다면 그건 상자(인생) 자체가 썩었다고 시인하는 셈이야. 평일도 적당한 팥떡 정도로는 느껴야 덜 슬퍼"
_여준영 Instagram
나만의 리듬이 단절되지 않기를. 혹 단절되더라도 다시 꾸역꾸역 리듬을 이어가기를.
평일도 그럴싸하게 채워 지기를. 그것이 모여 꽤 괜찮은 삶이 되기를.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과거가 되어 자취를 감췄고 가을이 주변을 감싼다. 좋았던 순간은 늘 짧고,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기에. 그렇게 또 겨울이 오겠지.
ps.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고 싶은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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