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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형수가 쓰러졌다.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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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가 쓰러졌다. 깨어보니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다. 형수는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했고 그렇게 나와 조카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엊그제 갓난아이였던 것 같은데 벌써 세 살이란다. 오르지 못했던 소파를 쉽게 오르게 되었고 손에 닿는 물건들이 많아졌다.(그만큼 집은 쉽게 난장판이 된다.) 이제는 제법 말도 잘해 말동무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가끔은 앵무새 같기도 하다.) 남자아이라서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한다. 특히 tv를 볼 때면 '헬로 카봇' (tv 만화로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여 악당들을 무찌른다.)을 틀어달라 조른다. 뽀로로의 대항마가 아닐까 조심히 예상해본다.       


보통 주말에는 늦게까지 늘어져 자는 편인데 아침 일찍부터 조카가 침대 위로 올라와 "삼촌 일어나. 삼촌 일어나."하며 흔들어 깨운다. 아기 냄새와 부드러운 살결의 느낌이 좋다. 어머니는 아침식사를 준비하시느라 분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카의 밥과 반찬은 맵거나 간이 심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밥상을 두 번 차리는 것과 다름없다. 떠먹여 주는 밥을 잘 먹는다 싶지만 흘리는 내용물이 반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먹어된 탓에 거실에는 지뢰로 (잔여물) 가득하다. 밥을 먹은 지 몇 분이 채 흐르지 않아 "삼촌 밖에 나가자. 붕붕 하러 나가자." 졸라된다. (아... 나의 휴일이여) 아기가 타는 자동차는 왜 이렇게 무겁게 만들었는지 학교 운동장으로 들고 가는 내내 속으로 욕을 해댓다. 조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삼촌은  따라와." 직설적이고 간결한 음성을 남긴 채 멀어져 갔다.  


아침 일찍 일어 난 탓인가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낮잠을 자려고 폼을 잡고 있는데 그가 방에 나타났다. 장난감 자동차를 하나 주면서 장난감 놀이를 하자고 한다. 물론 본인은 '헬로카봇'이고 나는 노란색 포크레인을 쥐여 주었다. 뭔가 빈정 상해 삼촌에게도 '헬로카봇'을 달라며 보이콧 선언을 했지만 꽤 무게감 있는 발길질만 돌아왔다.

 



반나절 조카와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벌써 체력이 바닥을 보인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와 나는 거실 소파에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조카가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 윤이 시.... 할머니 윤이 시 했어." 너무 놀란 나머지 누워 있던 몸을 순식간에 일으켜 세워 화장실로 유도하려 했지만 바지가 젖은 뒤였다. 오줌은 이미 소파 페브릭에 흡수되어 남미 지도와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었다. 부랴 부랴 휴지와 마른걸레로 손을 써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머니는 '기저귀를 채울 걸..'이라는 혼잣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고 화장실로 데려가 바지를 벗기고 젖은 몸을 씻겼다.


주말인데 이렇게 노동 못지않은 것을 하고 있다 보니 도망이라고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깨도 좋지 않은 상태인 데다가 혼자서만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집은 이미 엉망인 데다 치워봤자 곧 더러워질 것이 뻔했기에 눈에 심하게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평소에 집을 워낙 청결하게 유지하는 어머니의 성격상 그대로 방치해 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도 어쩔 수 없어 보였다.


해가지고 어둠이 오자 세 살짜리 아기도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건지 창밖을 내다보며 엄마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부르며 닭 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생가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오면 형과 같이 시골 할머니 댁에서 지내곤 했는데 밤마다 엄마가 그리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카를 달래려 안아 들었다. '토닥, 토닥' 매끈하고 잡티 하나 없는 아기 피부와 냄새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가 있다. '삼촌 뽀뽀' 병아리 부리 같은 입을 가져다 댄다. 안은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팔과 어깨가 저려온다. '형수는 이 녀석과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걸까?' 이래서 흔히들 애 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고 하나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하다. 내가 단 하루 애를 보고 느낀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어떻게 한 살 터울의 형과 나를 키웠을까? 그것도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점점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니 뭔가 울컥하면서 무심히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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