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정이 생겨 해외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아쉬움을 접고 국내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던 중 동해 바다와 닿아있는 7번 국도를 따라 강릉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최종 목적지도 없이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며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는 것이 우리가 정한 유일한 기준이었기에 첫째 날 숙소만 정한 채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면 알아서 시작된다.
울산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처음 만난 곳이 영덕이었다. 그렇다 대게의 고장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이때까지 대게를 먹어보지 못했다. 물론 뷔페에 가면 볼 수 있는 킹크랩 살 점이 들어간 샐러드나 삶은 대게 다리 정도는 먹어봤을지는 몰라도 한 마리 통째로 쪄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단지 비싸다는얘기만어디서들은적이있었다. 여행은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래서 대게를 먹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면 나는'Nowor Never' 를 떠올린다.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답은 빨리 나온다. 일단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맛이 없으면 이후부터는 사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 어떤 결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이 든다.
대게 모형이 건물마다 걸려있고, 찜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앞치마에 장화를 신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차를 향해 손짓한다. 길 입구부터 차는 길게 늘어져주차장이 되어버렸고 거북이걸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니 가게 입구에서 손님을 모으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때론 운전석 가까이 다가와 차문을노크를하기도 했는데"삼촌 싸게 맞춰줄게. 들어오세요." 정면을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오기 전 '영덕대게'를 검색하여 여러 리뷰를 찾아보았다. 신기하게도 식당마다 상차림 구성이 비슷했다. 대게와 회 그리고 대게를 이용한 여러 요리들이 나왔는데 상다리는 휘어질 듯 푸짐했지만 젓가락이 가고 싶은 곳은 몇 곳 없었 보였다. 나와 여자 친구는 갓 스팀 샤워를 마치고 빨갛게 달아오른 대게만 배불리 먹고 싶었지, 대게에 치즈를 올리고 다른 기교를 더한 음식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교가 조금 더해진 것들로 인해서 가격도 더 부담스러워지는 듯했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리뷰에서 본 식당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장을 만났다. 시장을 만나면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동작이 빠릿빠릿해지며 흥분되기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시장은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고 실패 확률도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입구부터 덩치 큰 게들이 수족관을 가득 채우고 있고 매대에는 바닷가재, 킹크랩,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해산물로 가득이었다. 게들의종류와 가격을 물어보고응근슬쩍만져보기도 하면서 우리는마치 어린아이처럼 시장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한 매대에서 10 kg 즘 되는 덩치 큰 대게 두 마리를골랐다.영덕대게는다리에완장을차고있다.우리가고른게는영덕대게와 비슷하게생겼지만외국 바다에서잡힌대게인 듯했다. (가격흥정후알바생을따라 가면 식당이 나오는데 거기서 만원을 내면 찜을 해서 내어 주는 시스템이었다.) 대형식당들에 비해 가격은 절반 정도였다. 우리는 꽤 괜찮은선택한 것에 흡족해하며 알바생을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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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이식당에게를넘긴다.게가 스팀샤워를하는동안여자 친구에게물었다. "과연 어떨맛있까?"대게를먹어본적있는 그녀가 답했다. "게맛살맛이야."정말김 빠지는대답이아닐수 없다. 게맛살을먹기 위해10만 원도넘는돈을투자하다니. 30분가량스팀샤워를마친대게는배테랑아주머니들의손놀림으로먹기 좋게잘라져 상에오른다.흥분되는 순간이다.첫경험은 언제나 설레는법이다.다리의살을빼서입에넣었다.드라마틱한맛은 아니었지만자주먹을수있는게가아니었기에살한점남김없이먹고게딱지에붙어있는 게의 내장에 밥도비벼먹었다.게딱지는나중에밥을비벼먹을것을고려하여처음에는나오지않는다. 살을다먹고밥을비벼달라고하면주방에서만들어서가져다주신다. 이제 와서하는얘기지만아주머니에게게딱지둘중하나는 게살에 소스 삼아찍어먹을수있도록 같이 내어달라고 하지 못한것이아쉽다.역시처음은어설프다.그래도이제나는대게를먹어본놈이 되었다. 정재승교수는 나이가들수록시간이빨리 가는이유를우리가시간의흐름을사건의축적으로인식하기때문이라고했다.어렸을때는온통새로운사건뿐이지만나이가들수록많은것을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사건을접하기보다는익숙한것에둘러싸여있다.낯선환경에 자신을 두고 새로운사건을경험하기에여행만큼좋은것이또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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