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야 영화를 꽤나 즐기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피크 시간 때에 몰리는 인파를 피할 수 있고 가끔 큰 영화관을 혼자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가뜩이나 해가 지고 나서도 푹푹 찌는 더위는 누그러 들줄 모르고 양질의 수면 또한 집을 나간 지 오래다.
지난 주말 늦은 저녁 '택시운전사'와 '군함도'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휴가 기간이라 그런지 보통 때 와는 다르게 연인들과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택시운전사'는 박정희가 김재규에 총살당하고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 세력이 등장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려 할 때 이에 반대해 민주주의 후퇴를 막고자 전라도 광주와 그 일대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 하시마로 강제 징용되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탄광에서 일을 하게 되는 조선인들의 애환을 스크린에 담았다. 두 영화 모두 뼈아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풀어 간다는 점에서 선을 같이 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극장을 나서며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 모두가 현재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은 그냥 주어진 것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을 들고 신군부 하의 공수부대원들과 맞서 그 치열한 현장에서 피 흘려 싸우셨던 광주 시민들이 있어서였고, 일제 치하 먼 이국 땅에서 갖은 핍박과 서러움 속에서 굴복하지 않고 언젠가 맞이하게 될 독립을 상상하며 목숨을 바친 순국 선령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린 지금 바로 이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접한 '박영수 특검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징역 12년 구형'이라는 속보가 떠오른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고 그 힘에 편승되어 뭔가를 얻으려는 자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이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우리가 매서운 칼바람과 눈을 맞으며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길을 나섰 던 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알려주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_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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