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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회식하고 있네 (2)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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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당일이 되면 전무는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네 차 가지고 왔는가?"하고 물음을 던져온다. 회식 당일 항상 물어오는 질문이다. 예상컨대 업무가 끝나고 회식 장소까지 이동을 고려한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차를 가지고 온 경우 술을 마시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리라.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자 업무 마친 사람들은 먼저들 조를 짜서 출발들 하지.' 정각이 되면 알려주는 뻐꾸기 시계처럼 전무는 준비된 멘트를 던진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먼저 출발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 각자의 잣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보통 선발대로 출발할 경우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 좋은 자리란 센터 테이블과 멀고 한쪽 구석에 위치하면서도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끼리 조를 짜는 건데 임산부 한 명이 조원이 될 경우 그 테이블은 맑은 정신으로 귀가 택시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앉아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 몇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친하진 않지만 몇 시간 정도의 가식이 장전된 애들은 그런 수고스러움을 알더라도 그 자리를 선점하려 든다. 과장은 매일 바쁜 척을 하지만 특히나 회식 당일 퇴근 때가 되면 없던 일이 더 생기는지 '먼저들 가세요. 정리해놓고 따라 갈게요.'가 과장의 18번이다. 

 

테이블마다 많다 싶은 정도의 안주를 주문한다. 여자가 대부분이고 남자가 가뭄에 콩 나듯 있는 회사지만 실로 여자들이 먹어치우는 양은 상상 이상이다.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여자가 많은 회사에서는 남자가 살이 빠질 확률이 높다. 비만인 남자들이여 여자가 많은 회사에 다녀라!) 안주가 하나 둘 자리잡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회식이 시작되면 몇몇 푸드 파이터들의 젓가락질이 빨라진다. 일부 여직원들 사이에서도 '쟤는 먹는 거 앞에서는 사족을 못써' 이런 류의 얘기가 나오는 거 봐서는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여자가 많은 회사 특성상 '다이어트 중이에요.'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사서 먹지만 포만감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컵라면을 추가한다던지 업무 중에 책상 서랍 (군대 PX로 의심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먹을거리를 구비하고 있다.)에서 꾸준히 무엇을 꺼내 입에 넣기 바쁘다. 틀림없이 다이어트의 뜻을 모르고 있지 않을까?  




술도 몇 잔 들이켰겠다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가기 전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와 같았는데 정말이지 술의 힘은 대단하다. 있지도 않은 친목을 만들어주니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익숙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전무는 언제 어디서든 가족 얘기를 잘 늘어놓는 편인데 한숨을 쉬면서 가족 구성원들의 단점을 쏟아내는 거 같아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다 자랑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 와이프는 매일 회사일로 출장을 가서 집을 비우거나 술 약속이 많아 집에 늦게 들어온다. 그래서 집안 청소나 애들 밥을 챙기는 것은 다 자기 몫이라는 건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만큼 그의 와이프는 한 달에도 몇 번 해외 출장을 갈 정도로 프로페셔널하고 본인은 음식 준비부터 청소 그리고 분리수거까지 도맡아 하는 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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