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간에 있지도 않는 친목을 도모하면서 법인카드로 밥 먹고 술 사 먹는 회식 중이죠.
한 달에 한 번 의무적으로 부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메신저로 과장이 '다음 주 월요일 회식 예정이오니 시간 비워두시길 바랍니다.' 단체 메시지를 보낸다. 모두 다 사형 선고와 같은 메시지를 받아 보았는지 네이트온 대화창 읽음 표시는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린다. 월요일부터 회식이라니 미친 거 아닌가...(물론 특별한 약속은 없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 거부감은 어쩐다...) 다른 직원들은 두세 명씩 다른 대화창을 열어 욕을 하고 있을게다. 평소 업무 외엔 대화를 잘 하지 않는 사무실 분위기 상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 정적을 깨기엔 충분하다.
나와 같이 운동하는 아무개는 자기네 회사는 회식을 안 해서 죽겠다고 우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참고로 그는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노총각임을 미리 알려둔다.) 화면 속 작업표시줄 메신저 아이콘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누군가 글은 적은 거다. '이번 회식은 어디서 했으면 좋겠는지 다들 추천해주세요. 아니면 우리 집 근처로 정합니다.' 역시 과장이다. 이 인간은 진짜 자기 집 앞에서 회식을 할 수 있는 여자다. 습관처럼 본인 집 근처 맛집을 나열하는가 하면 '집에 와서 라면 먹고 가'라는 소리를 자주 한다. (중요한 건 그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대부분의 회식 약속은 내가 코끼리(카레와 면을 좋아하고 '마가렛트'라 불리는 쿠키를 애정 한다.)라고 부르는 전무라는 작자와 과장이 먼저 조율을 하고 나와 같은 하빨이들한테 일방적으로 수직 하달된다. 또 창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네!', '넵- 알겠습니다', '네', '넵~' 이런 무미건조하고 단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대화창에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오랜 세월 짓밟혀 하나같이 온순하기 짝이 없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바람은 그리 커다란 욕망이 아닐 것이나,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 풍토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것이기에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 조차 어렵다. 그러하기에 한국에서는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_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이왕 이렇게 된 거 비싸고 맛있는 거나 배 터지게 먹자고 밑엤것 들이 대동단결 했다. (먹는 거 앞에서 실행력은 이명박이 사대강을 밀어붙이는 속도와 비슷하다.) 제 돈으로 지불한다면 절대 가지 않을 그런 곳을 찾아내기에 혈안이다.
회사에는 중간 계급이 극히 드물다. 출산 휴가 또는 육아 휴가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씩 자리를 비웠고 (사장, 전무 그리고 상무는 이점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우리 복지 좀 하지 않니?' 이런 느낌이랄까?) 몇몇은 '개인 사정'이라 쓰고 실은 돈을 조금 받거나 인간관계에 지쳐 사직서를 제출했다. 중간이라고는 나와 입사동기 여직원 한 명이 전부이고 이제 막 수습기간이 지나거나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신입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떻게 된 판인지 요즘은 중국의 인구수만큼 늘어난 아랫것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
물론 최종 회식장소 결정은 전무의 몫이다. 운이 좋아 추천 장소가 받아들여지면 아주 가격이 비싼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 집에 가기도 한다. 하루는 트렌디한 음악과 함께 햄버거나 각종 서구식 안주를 내놓는 수제 맥주 집에 간 적도 있는데. 그날 2차는 김치찌개 집(이 무슨 조합인가?)이었다. 결국은 2차를 기본으로 봤을 때 두 중 한 곳은 전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가게 되어있다. 주변에서 예의상 '전무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안 먹어 본거 먹고 싶다.'라고 답한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나는 본다. 첫째는 '회사 근처는 다 먹어 봤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자'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입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너희 들이 억지로 따로 오는 모양새가 될 터이니 너희들의 센스를 십분 발휘하여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척척 맞춰보렴'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2편은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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