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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할머니의 아날로그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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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매년 엄마의 음력 생일에 맞추어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신다. 간혹 하루 이틀 지나고 연락을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양력이 아닌 매년 바뀌는 음력 생일날에 맞추어 '생일밥은 먹었는지, 얼마 전에 시골에 내려왔을 때 단돈 5만 원이라도 줄 것을 주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씀하신다. 여든이 넘는 연세에 이제 곧 환갑을 바라보는 딸의 생일을 맞아 5만 원을 주시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여전히 자식으로 남는 모양이다. 엄마의 음력 생일이 다가오고 있는 것조차 몰랐던 나로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자녀의 생일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이렇게 연락을 주시는 걸까.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기억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요즘처럼 한두 명의 자녀도 아니고 1남 3녀 총 4명 모두의 음력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 들뿐만 아니라 조카들의 생일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연락을 하여 안부를 묻고 하셨단다. 




어제 엄마는 외할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말을 이었다. 할머니께서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큰소리로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기억력 감퇴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하지만 그저 그렇다고 인정해 버리기에는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마트폰 음력 생일 알림 어플에 의존한 채 기억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디지털보다 할머니의 수고스러운 아날로그 기억력이 더 사랑스럽고 정겹게 느껴지는 밤이다. 


그 날이 더디게 더디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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