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칼럼] '한국어에 불만 있다'를 읽고
다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속으로 '존댓말을 써야 하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래도 업무적으로 처음 만났으니 어리다고 해도 존대를 해야겠지?' '아무리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다고 하지만 초면부터 반말을 찍찍하는 모양 하고는, 재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외모를 보고 나이를 대충 따져 본 후 존대할 것이지 판단하게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상대가 풍기는 포스에 눌려 자동적으로 존댓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한국말에는 중간중간에 자기의 위치를 과시하는 단어와 뉘앙스가 배치되어 있긴 마련이다. 이처럼 한국말을 사용함에 있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상대 검증의 과정이 필수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서 약자는 한 없이 약해지고 강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쳐된다.
누군가와 한국말을 쓸 때마다 지위고하를 따지게 된다. 나이는 몇 살인지, 직함은 무엇인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존댓말을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래에 놓인 사람은 싫더라도 상대를 존대하며 치켜세워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종종 무기력을 느끼고 순종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낮음을 인지하고 당연한 권리인양 거침없는 말로 상대를 하대하기 시작한다. 일명 갑질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하대 받거나 존중받지 않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고 자신은 반말을 듣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점이 사회를 출세 지향적으로 만들었고 남을 자기 밑에 두려고 다들 안간힘을 쓴다.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높은 자리 하나는 차지해야 한다고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 이제야 귀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지위가 높거나 갑질 하려는 사람과 얘기를 하지 않거나 내가 아주 높은 지위에 위치하면 된다. 사실 둘 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 칼럼에서 장강명 작가의 설루션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모든 성인에게 존댓말을 쓰자는 것이다. 언어가 바뀌면 몸가짐도 바뀌게 되고 그것이 상대방의 최소한의 존엄은 지켜주게 된다고. 그리고 묻는다. 동등하거나 조금 아래에 위치한 상대에게 친하다는 이유로 반말을 한다면 반대로 그가 당신에게 반말을 할 경우 참고 넘길 수 있는지를?
http://www.hankookilbo.com/v/ee6d879309e945b59d6e365ec84d5f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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