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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바야흐로 부동산의 시대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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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不動産                                               

<법률>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 토지나 건물, 수목 따위이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은퇴시기가 코 앞에 다가온 부모님들은 이때가지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100세 시대의 첫 탑승자가 된다. 예전 같았으면 은퇴 후의 삶이 길지 않아 오히려 큰 고민이 없었겠지만 지금의 부모님 세대들은 은퇴 후에도 2, 30년는 더 살아야 하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은행 금리는 바닥을 친지 오래고 자식들의 삶은 앞으로 더 팍팍해질 일만 남았으니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매 월 월세가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어느 무엇보다 든든한 삶의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지난 몇 달 주말이 되면 부모님과 집과 땅을 보러 다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머니와 형은 이름도 웃긴 '부동산 콘서트'라는 강연에도 다녀왔더랬다. 거기를 다녀온 후 형은 어디서 정보를 얻어오는 건지 가족 단톡 방에 새로 나온 매물을 올리는 것에 열을 올렸고 그 관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정작 투자할 돈은 부모님 돈인데..) 게다가 유명 아파트 청약 날이 되면 모델하우스를 다녀와서는 친절하게도 'XX 아파트 84A형 청약 신청'하고 짤막한 코멘트를 남겨 놓곤 했다. (이때까지 넣으란 거는 다 넣어지만 한 번도 당첨된 적은 없다.) 이 청약이라는 게 로또와 다름없어서 유명 건설사에서 짓는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몇 백대 일은 기본이다. 당첨만 된다면 피가 (P: Premium) 작게는 몇 천에서 억까지 가니 이만한 장사도 없다 싶다. 



요즘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자연스레 부동산 얘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살고 있는 집의 시세나 아파트 청약은 단골 안주거리다. 누군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면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너나 할 거 없이 고수익행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동산으로 대박 난 사람은 많아도 쪽박 찬 사람 얘기는 좀처럼 들어보기 힘들고, 나 또한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남들은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데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될까 하는 불안이 모두를 부동산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초등학생 장래희망에 '건물주'가 '연예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한 치 앞도 모르는 현실에서 적은 노력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트코인, 부동산 투자'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현주소이다. 개발이 예정된 곳은 부르는 게 값이고 하루가 다르게 건물들이 생겨나간다. 투자 부지에 경전철이 들어온다는 얘기부터 국제 유치원, 대형마트까지 진실인지 소문인지 분간되지 않은 날 것들이 범벅이 되어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를 때로 오른 가격은 들을 때마다 좌절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정보와 소문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절대 도박에 손대지 마라." 

"아들이 돈 잃을까 봐서요?"

"네가 돈 딸까 봐서다."

"예?"

"주식이니, 뭐니, 네가 돈을 딸까 봐 겁난다. 그런 걸로 돈을 벌면, 매일매일 일해서 월급 받는 삶이 한심해 보인다.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걸 한심하게 여기는 순간, 인생은 끝난다. 행운이 끝없이 이어질 정도로 세상이 만만하지는 않거든."


아버지 주위에 퇴직금으로 주식에 손을 댄 사람이 많아요. 개중에는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증권회사 매장 전광판 앞에 앉아 마치 무슨 중독자처럼 시세판만 들여다보며 산대요.


http://free2world.tistory.com/1603?category=304672 [공짜로 즐기는 세상]



일은 꽤 고되었다. 냉동, 냉장, 건자재 박스 150여 개를 일주일에 세 번 내리고 올렸다. 물류 하차를 마치고 바로 강의에 들어가야 하는 날도 많았다. 가끔은 강단에서 다리에 힘이 빠질 만큼 힘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이 육체노동을 계속해야겠다고 여러 번 마음먹었다. 이전보다 더 그들을 한 인간으로 존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에 없던 자각, 노동은 그러한 성찰을 가능케 했다. 책상에서 글로 배웠던 '노동의 가치나 신성함' 같은 것들이 비로소 삶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몸으로 배운 가치들은 삶의 태도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는 연습을 반강제로 시켰다. 그것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환희와 기쁨이었다. 그래서 '지방시'의 어느 장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든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겠다"고 썼다. 거기에도 덧붙였지만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게 배운 삶의 태도를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었다.       


_대리사회, 김민섭                            



'인생은 등가교환이다.'

아니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보이지만, 그렇다고 감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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