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보니 허리가 긴 체형까지 닮은 곳이 많기는 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과 아버지가 자주 하는 행동이 무의식 결에 나와 놀랄 때도 있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통해 위에 용종(혹)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조직 검사 결과 위암으로 밝혀져 온 가족이 적지 않게 놀랐었다. 오래전 할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지만 가족 중에 또 암환자가 생길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암은 그저 먼 얘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암이라는 병은 두 번째 다가와도 통 면역이 생기지 않아 매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다행히 위암 초기였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수술과 치료를 받아 현재는 많이 호전되어 일상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아버지는 수술을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나와야 했고 말랐던 몸은 수술 후 더 야위어 갔다. 평소 티브이에서 덩치가 크고 근육질 몸매의 남성들을 보면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던 아버지는 살을 찌우려 많이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지만 수술을 계기로 이상은 물거품이 되어 더더욱 멀어져 갔다. 평소에 즐겨 먹던 짜고 자극적인 음식과 밀가루 음식 특히나 '빵과 라면'을 멀리하면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커 보였고 여러 가지 이유로 예민해져 주변 사람들까지 긴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 말고는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아버지는 하루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도 힘들다며 지겨움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아들이지만 딱히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아버지와 나는 한숨만 늘어갔다.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고 이제 은퇴를 할 연세가 되었지만 '놀아서 뭐하겠냐'며 일자리를 찾아 나선 뒤에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돌아오시곤 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항상 근검절약하셨고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본인을 위해 옷을 사 입거나 낚시나 다른 취미 활동도 돈이 든다는 이유로 일절 하시지 않았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경우가 없었고 고장 난 물건도 몇 번을 고쳐 사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도가 많이 심각해졌다. 잘려나간 암 덩어리가 사람을 더 구두쇠로 만들어 버린 걸까. 일정한 수입원이 없어져서 인지 모든 것을 극도로 아끼기 시작했다. 물과 전기는 물론 음식물이 남아 버려질 때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하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잔소리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탄다면 몇십 분도 채 안 걸릴 거리를 굳이 한 시간이 넘게 걸어서 다니신다. 이때까지 고생만 하셨으니 이제는 아등바등 악착같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좀 느긋하게 삶을 즐기면서 사시라고 말을 하면 너희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고 만다.
소 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다. 재밌는 점은 아버지도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 이제는 농사일 그만 하시고 집에서 계시면서 집안일이나 살살하며 좀 쉬시라고 하시지만 할머니는 일을 안 하면 뭐하냐고 더욱더 농사일에 박차를 가하신다. 이것이 2대에 걸친 부모와 자식과의 간극인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할머니와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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