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후반부를 향해 달려간다. 1차를 파하고 2차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일반 적이다. 보통 치킨집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어두 컴컴한 조명은 여직원들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흐트러진 메이크업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2차에서도 자리 선점은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그렇게 눈치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이제 이야깃거리도 슬슬 떨어질 터 하나둘씩 화장실을 가서 돌아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직원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는 부상병들이 발견될 시점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부상병들은 화장실 근처에서 발견된다. 엎드려서 잠을 자기도 하고 힘들 몸을 이끌고 비틀비틀 걸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해 데기도 한다. 선배들은 도로변으로 나가 '빈차'라고 적힌 앰뷸런스에 손을 흔들어 되고 신속히 환자를 옮기기 위해 바빠진다. '괜찮아, 괜찮아, 내일 아침에는 회사로 오는 발걸음이 아주 무거울 거야'라는 마음과 함께. 사실 입사 초반에는 나도 저 앰뷸런스를 꽤나 타고 다녔다. 슬픈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 대단한 양반의 가정사는 자정이 가까워져도 끝 날 줄 모른다. 술에 취했어도 전무의 이야기보따리에서는 이야기가 생성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여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지만 술에 취해 정도는 심해질 뿐이다. '자식 놈들 아들이나 딸이나 키워나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이제 곧 직원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한 뒤 '자네들도 다 혼자 살아. 결혼해서 좋은 거 하나도 없어, 고생만 하지 뭐.'라는 얘기를 할 것이다. 평소에는 'XX 씨, 올해 나이가 몇이지? 그렇게나 많아? 이제 가야겠네.'라고 여직원들 가슴에 '빅엿'을 선사는 역설적인 인물이다.
길고 긴 2차도 전무 또는 과장이 계산을 하고 나오며 지갑에 영수증과 법인카드를 넣음과 동시에 끝이 난다. 왜 이 모임을 가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동그랗게 모여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다. '자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들 하지.' 같은 방향끼리 택시를 타고 갈 준비를 시작한다. 윗 분들께서 기분이 좋아 택시비를 챙겨주느 경우도 더러 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회사 규모가 커지고 직원 수가 많아지면서 택시비로 지갑이 열리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는 보통 과장과 한 조가 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이제까지 잘 알지 못했던 고급? 정보를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듣곤 한다. 보통 직원들 욕이거나 임원들 욕이 다지만 간혹 쓸만한 정보를 건지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이번 보너스는 금액이 어느 정도 될지, 신입 직원을 더 충원할 것이라는 정보 정도 되겠다. 택시 미터기의 말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꽤나 늦은 시간이다. '언제 씻고 언제 잘 수 있을까?' 한 숨이 나온다. 고단하고 긴긴 하루였다.
아침해가 밝았다. 피폐해진 몸을 끌고 출근이란 걸 해야 한다. 금요일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회사에 도착했는데 서로가 서로의 눈을 피한다. 어제 아주 둘도 없는 친구처럼 웃고 떠들었다 해도 오늘 아침부터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평소보다 30분 정도 출근이 늦은 전무는 자리에 앉자마자 외친다. '다음 달은 회식을 어디서 하지?'
-끝-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내용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것들을 독자들에게 풀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외쳤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이 글을 읽는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의 분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나 자신도 점점 보수화되어 가고 밑에 후배들을 선을 그어 아랫것들로 칭하는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린다. 분명한 것은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 버티고 버티면 나 자신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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