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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야구처럼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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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야구를 소재로 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


인간은 원래 후회의 동물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대충대충 해야 된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외부의 어떤 자극과 사건에 상관없이 치열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마주 보아야 한다. 결국은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사건에 반응하느냐가 다름을 만들어 낼 것이니까. 무엇이든지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자들은 한계가 선명히 보인다. 스탠딩 삼진을 당하고도 그 찰나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마주 보는 타자의 미래는 밝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231044001&code=990100&s_code=ao157




<‘역설적’인 야구의 인문학>                                                  


역설적이라 함은 우리 일상의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희망사항일 뿐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안 될 때, 누가 대신 경쟁의 마당에 나가주고 대신 뛰어주는 ‘인생의 대타와 대주자’는 결코 흔치 않지요. 나를 밀어주기 위해 누군가 선뜻 희생하는 일도 참 드뭅니다. 위기에 처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언제나 나서는 경우가 일상사는 아니지요. 때론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우리 일상입니다.



야구를 보다 보면은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인간미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면 괜한 발걸음을 해야 했던 관중들을 달래줄 겸 선수들이 방수포가 덮인 홈플레이트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며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끝내기 안타나 홈런으로 팀 승리를 견인할 경우 해당 선수를 향해 덕 아웃에 있던 모든 팀 동료들이 뛰어나와 물을 뿌리고 머리를 두드리기도 한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선수들이 손바닥이나 주먹을 부딪치며 지나가는 장면 또한 인상 깊다. 가끔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 팀의 선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대부분의 단체경기가 그렇듯 야구 또한 특출 난 선수 한 명이 잘 한다고 해서 팀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석이 도와주지 못하면 승리하기 어렵고 아무리 방망이가 불을 뿜어도 투수가 받쳐주지 못할 경우 승리는 날아가버린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팀워크 그리고 감독의 전략이 고루고루 버무려질 때 팀은 순풍에 돛 단 듯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 적이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할 때도 있고 순전히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득을 보는 상황도 생긴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옆 사람의 실수로 나에게 까지 피해가 오기도 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남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반대로 어려운 일에 처했을 경우 두 팔 걷고 자기일 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우리는 좋든 싫든 더불어 사는 것이다. 야구처럼.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223/3/70040100000223/20170916/863547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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