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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내 안의 진시황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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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나의 늙음도 내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다.'

_영화 은교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어 가는 것을 목격한다. 


예를 들면 정리정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었는데 언제부턴가 생활하는 공간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정리되어 있는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긴장이 풀린다. 예전에는 입도 대지 않았던 각종 채소류를 먹기 시작했고 나름 그 재료 본연의 맛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골고루 음식을 섭취했다면 알레르기로 고생하지 않았으려나) 과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기피하게 되었고 그러한 것들이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곧바로 반응이 전달되고 탈이 나고야 만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그리고 가끔 외롭기는 하지만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져서 편하게 느껴진다. 같이 하는 이들의 기대와 요구로부터 벗어나 오직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니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었다.


혼자 보는 영화, 혼자 마시는 술이 돈도 적게 들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행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인간들이 있어 가끔은 혼자 무언가를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어디 조용한 장소에서 온종일 책만 읽고 싶을 때도 있다. 이 좋은 것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지금이라도 책과 가까워져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 후회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던 이전과는 다르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횟수가 늘었고 헛으로 보내는 시간을 줄이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고 특별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깨달았고 '나도 별수 없는 똑같은 사람이구나'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어렸을 때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닌 무언가 깊이 있는 공부, 참 공부를 하는 것의 재미를 약간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음악과 미술, 곧 예술은 특정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주체적으로 만끽할 수 있으며 친구처럼 가까이 두어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우울함을 쉽게 느낀다. 그리고 그 우울함은 깊은 낭떠러지와 같아서 한번 들어갔다가는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지금도 그 우울함은 유효하다. 아직도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아니 혹자는 철근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딱딱한 것을 씹어 먹을 나이라고 했다. 나이 듦이 주는 무게감을 견디기에는 많은 버거움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사유의 깊이는 깊어졌지만 그래도 마음 한 곳이 허한 거는 어쩔 수 없다. 나이가 들어 좋은 이유 10가지가 넘게 있어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의 적수가 되지는 못한다. 조금이라도 나마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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