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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라 '여행'

떠난다는 것은 (지난 여름의 끝자락, 제주도에서)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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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떠나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고 가는 무언가 때문에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로 늦은 휴가를 떠나왔다. 평일이지만 유명 음식점은 관광객으로 붐볐고 차창 밖에서 구수하고 추억을 담은 시골냄새가 석양에 뒤섞여 흘러 들어와 코를 즐겁게 했다. 도로 곳곳에 제주도 특산품인 귤과 한라봉 파는 간이 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과연 제주도 흑돼지 수가 관광객의 수요를 따라갈 수는 있을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들만큼 많은 흑돼지 구이 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여행은 즐겁고 행복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익숙하던 생활 패턴이나 장소를 벗어나 낯선 곳을 거닐며 입이 절로 벌어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거나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지역 특산품이나 각종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쳐있던 심신을 달래어 어떤 문제를 긍정적인 태도로 봐라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만큼 반대의 측면도 크다. 예를 들어 매 끼니때마다 '아무리 여행지라고 하지만 이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잖아', '어느 식당에 가야 실패하지 않을까' 따위의 것들을 고민해야 하고 실패하면 공을 들여 고른 만큼 스트레스도 큰 법이다. 집에서 생활했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수만 가지의 것들을 여행지에서는 필연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후회하게 된다. 





여행에서 싫은 점 중 하나는 생활의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는 거다. 서울 내 집에서라면 샤워 후 선반에서 뽀송한 새 타월을 꺼내 머리를 닦고 까슬한 샤워 가운을 입겠지. 몸이 어는 정도 마르면 잘 다린 파자마로 갈아입을 테고, 그 모든 것에선 내가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날 것이다.


_초보자와 전문가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평일에 하는 여행이라 그런지 제주도민들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얼굴을 가리기에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길고 동그란 창 모자와 수건을 두르고 밭으로 산으로 길을 나섰고 길을 정비하는 사람들, 공사현장의 인부들 그리고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는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9월이라고 하지만 낮은 여름과 다를 바 없는 날씨에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환갑을 목전에 둔 아버지이다. 집에서 놀아서 뭐 하겠냐며 이른 새벽부터 공사장에 나가서 일하시는 아버지는 근검절약을 넘어 가족이 보아도 혀끝을 찰 정도로 모든 것을 아끼신다. 그러니 본인을 위해 여행을 가거나 취미 활동을 한다는 것은라 아주 먼 얘기이다. 그런데 그 자식은 팔자 좋게 여행자가 되어 좋은 풍경과 맛난 음식을 즐기고 있자니 부모가 멀리 둔 자식이 눈에 밟히듯 그 비슷한 감정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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