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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라 '여행'

철 지난 여행기 - 일본 후지산 (2)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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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신주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후지산 5 합목으로 향했다. 좌측을 달리는 차들은 여전히 어색했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여기가 고속도로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등산로 입구 5 합목에는 (5th station) 벌써부터 중국인 단체 관관객들로 시끄럽다. (참고로 중국인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전공은 중국어이다. 중국어에는 성조라는 게 있어 제대로 된 뜻 전달을 위해서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목표했던 정상을 찍고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오려면 쉬지 않고 올라가야 한다. 혹시나 버스를 놓쳐 도쿄로 돌아가지 못하면 끝장이니까. 





후지산은 이제까지 다녀왔던 산과는 많이 달랐다.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화산산인 만큼 바닥은 온통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너덜지대뿐이다. 발이 푹푹 빠져 걸어 올라가기가 배로 힘들다. 행동식으로 준비해온 초코바는 이미 다 먹어치웠고 중간중간 쉬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모든 것들이 맛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가방이 조금 무겁더라도 먹을 것들을 충분히 준비 해올 걸 그랬다. 'Too much is better than not enough.' 사는 건 이처럼 후회의 연속일까.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선택이 지금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고 내가 한 선택들이 모여 곧 나의 삶이자 인생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 나 말고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바깥세상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가리는 것 없는 탁 트인 시야와 들리는 거라곤 바람소리와 나의 거친 숨소리가 전부다. 몇 시간 꾸준히 올라오다 보니 어느새 발 밑에 구름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중간중간 물을 많이 마셨더니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젠장!) 하지만 여긴 내 한 몸 가려줄 나무도 어떤 지형지물도 없이 사방이 훤하게 뚫려있다.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짚고 쉬고 있는데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옆을 지나가던 일본인 등산객이 "다이조부 데스카?"하고 안부를 물어온다. "하이, 다이조부 데스." 끝인 줄 알고 이를 악물고 올랐는데 더 높은 곳이 버티고 있다. 이 산엔 정상이라는 것이 있긴 한 걸까?  이 망할 현무암은 끝도 없이 나를 포위한다. 발걸음을 재촉한 지 4시간 즈음 흘렀을까 희미하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정상인가 보다. 나보다 일찍 올라온 무리들이 한 장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러된다. 일본인 노부부도 있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외국인 들도 보인다. 무엇이 이들을 이 곳까지 오르게 한 걸까. 그리고 난 여기에 왜 올라왔을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보고 싶었던 하얀 눈 덮인 정상의 모습은 보여주진 않았다. 군데군데 언제 녹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만년설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빙하도 2020년이 되면 자취를 감춘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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