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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믿지 마, 그리고 괜찮아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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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음에 와 닿는 TV광고 카피를 접하여 공유하려고 합니다. 시종 잔잔하게 흘러가는 내레이션이지만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 아버지가 퇴근길에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을 아들을 위해 마중을 나갑니다. 아버지를 본 아들은 무심하게 '왜 왔어?'하고 묻고 잠시 망설이던 아버지는 '그냥' 이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집에서 만나기 힘든 너에게 


공부 다하고 놀라는 말 믿지 마

대학 가서 놀라는 말도 믿지 마

어른되면 놀라는 말도 믿지 마


언제가 됐든 

마음껏 놀긴 쉽지 않더라



<2017 스위첸 TV-CF 현실 부자 편> 



우리는 왜 지금 당장 행복하지 못할까요? 마치 '현재의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 모아 두고 어느 때가 되면 은행 적금처럼 찾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 오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몇 번 자녀들에게 '괜찮아'라고 얘기하시나요? 오히려 그 반대는 아닌가요? '네가 지금 친구들하고 놀 때야?' '성적이 이게 뭐니' '힘들게 벌어 학원 보내 났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집에서 웃지 않는 너에게


친구랑 놀아도 괜찮아 

성적, 떨어져도 괜찮아

학원, 빼먹어도 괜찮아


실은 

이런 말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



<2017 스위첸 TV-CF 현실 모녀 편> 



어머니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불안해서 일까요.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평균 수명 연장으로 나 자신은 적어도 80까지는 살겠지? 그러니까 아직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고 원하는 무언가를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시간이야.' 앞으로 펼쳐진 미래와 인생을 알 수 없는데 경솔한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그것은 고작 40, 50년이 아니 그보다도 짧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관성에 젖어 30년을 넘게 살다 보니 하루를 사는 방법 (Seize the day)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방향타를 틀어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나름 애썼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마인드로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생활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낙관하기보다는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 보고자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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