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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른을 위하여!

노란색 스쿨버스

by Act first, Reflect later.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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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래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집 안 식구 중에 장애아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의 아픔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군 시절 이라크 파병을 간 적이 있다. 파병기간 중에 집에서는 걱정되는 마음에 이라크와 관련된 기사나 뉴스 보도를 다 챙겨 보았다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 형이 해양 경찰로 중국 불법 어선 나포 업무를 맡고 있을 때 '중국 불법 어선과 대치하던 해경 부상'과 같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온 가족이 볼륨을 높여 집중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본인 또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딴 집 얘기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나 자신이 또는 자식이 이러한 경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는 아전인수에는 익숙하지만 역지사지 자세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곧 중학생이 될 장애아를 위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821544&sid1=001



나이가 되면 특별한 노력 없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어이없게도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역 주민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학교가 지어질 수 있게 애걸하는 이상한 나라다. 그리고 그 장면은 보고 있노라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너의 자녀와 나의 자녀가 다른 점이 무엇이며 너의 자녀가 받는 권리는 일반적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이자 혜택이고 그들의 자녀가 받는 권리는 특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너의 자녀의 1인분의 행복과 그들의 장애를 가진 자녀의 1인분의 행복은 태어나면서 한쪽이 기울어져 있었단 말인가. '좋은 사회란 대단한 결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오찬호 작가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쳐도 기본권이 보장될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반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조차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것이 될 때 오는 박탈감과 괴리감의 무게는 한 사람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겨 먹었다고 하지만 주변의 둘러보자. 예수나 부처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권리와 행복을 어느 누군가가 누리지 못한다면 이사회는 평등하게 굴러간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아무 노력 없이 다 누리는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근처 조차 가지 못할 때 그 느낌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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