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에게 처음 조카 녀석이 생겼고 아버지에게는 손자가 생겼다. 그즈음부터 나는 아버지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던 거 같다. 실제 나이나 생물학적 나이를 보더라도 아직 영감님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고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작년 영감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소재의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 서울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시다가 부산으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을 나가겠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곤 며칠 지나지 않아 새벽 일찍부터 막일을 나가고 계신다. 게다가 원래부터 근검절약하시는 편이었는데 그 정도가 많이 심각해져서 문제다. 예를 들면 무더운 여름 정수기의 냉수 전원을 계속 켜두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냉수 전원을 꺼버리신다던지, 샤워를 할 때 보일러 온수 버튼을 누르면 '이 더운 날에 무슨 보일러를 켜나.'며 한마디 쏘아붙이신다. (독립을 하던지 해야지...) 뿐만 아니다 설거지하는 어머니를 보시더니 그릇에 거품칠을 할 때는 물을 끄고 하라던지, 음식은 남겨서 버리는 일이 없더록 딱 맞춰서 하라며 사사건건 간섭을 해되신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식구들의 식습관과는 별개로 그날의 컨디션과 식욕 등을 고려해야 할판이다.)
오늘 어머니와 영감님은 휴가차 전라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다니는 회사에서 1년에 한 번 호텔 숙박권을 제공해줘서 이번 여행은 시작되었다. 보통 영감님은 밖에 나가면 다 돈이라며 좋은 경치와 풍경은 집에서 TV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하시곤 했다. '여행도 자주 가본 사람이 간다.'는 말이 있듯이 가기 전부터 두 분 사이에서 불협 화음이 심하다. 어머니는 동창회나 회사를 통해서 여기저기 여행을 자주 다니 시는 편이어서 여행 짐을 싸는데도 능숙하시다. 아버지는 정반대인지라 가지고 가야 할 짐이 없다며 '몸만 가면 되지 무엇이 더 필요하냐.' 하신다. (난감하다....) 집과 회사외의 세상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바깥 세상 구경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어 오셨다. 여행을 다녀오시라고 하면 '그런 건 나중에 가도 늦지 않다.'라고 말문을 막아 버리신다. 현재의 행복을 마치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미래에 한 번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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